동학특별법 제정과 유족들의 명예회복
동학특별법 제정과 유족들의 명예회복
  • 소인섭 기자
  • 승인 2014.02.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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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120주년 특별기획 6.

 동학농민혁명은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변화시키고 근대민족국가 수립의 단초를 제공한 민족적 대항쟁으로 의병활동, 3.1운동, 4.19혁명 및 광주 민주화 운동의 모태가 됐다. 그러나 한동안 동학농민혁명은 ‘동학란’ 등으로 왜곡 평가절하돼 왔으며 이를 바로 잡고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2004년 3월 제정됐다. 2004년 9월 17일에는 특별법에 따라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가 발족했다.

 심의위원회는 봉건제도의 개혁과 일제 침략으로부터의 국권수호를 위해 봉기했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림으로써 민족정기를 선양하고 참여자와 그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활동을 펼쳤다. 또한, 심의위원회는 굴절된 과거사 진상 규명과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004년 8월 15일 광복 59주년을 맞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우리시대가 겪고 있는 분열과 반목은 굴절된 역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며 이런 토대 위에서 용서와 화해를 거쳐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 미래로 나아가자”라는 취지와 함께 학계와 정부에 의해 의욕적으로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이 추진됐다. 그 일환으로 그동안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잊혀왔던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실체적 사실 규명과 그 참여자의 명예 회복, 그 유족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다. 이는 사회적 갈등요인 해소와 더불어 불행했던 과거사를 역사적으로 정리하고 화해와 상생을 통한 진실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그 결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부위원 및 학계·언론계·시민단체 등 민간위원이 참여한 심의위원회가 만들어진다. 산하에는 결정 및 등록분과위원회, 명예회복분과위원회, 기념사업지원분과위원회 등 3개 분과위원회를 뒀고 전문연구자와 공무원으로 사무국을 설치했다.

 심의위원회의 가장 큰 성과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유족을 등록해 참여자와 유족 개개인에 대해 그 신원을 풀어주고 그들의 높은 뜻을 국가차원에서 인정해 준 것이다.

 심의위원회 활동을 정리해 보면 첫째, 유족등록신청 안건검토 및 사실조사, 유족등록신청 안건 심사조서 및 심의의견서 작성, 유족등록 심사 전문가조사팀을 운영했다. 또한, 이를 최종 결정기구인 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해 총 7회에 걸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참여자 498명을 결정하고 확정된 유족 1만563명을 등록했다. 유족에게는 유족결정서를 통지했다. 심의위원회는 이와 함께 문헌을 중심으로 참여자를 조사해 3천146명을 직권으로 등록했다. 이에 따라 심의위원회가 등록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3천644명에 달했다.

 둘째, 동학농민혁명 관련 조사 연구 사업을 추진해 국내외 개인 및 기관에 산재돼 있는 문헌사료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수집 및 정리를 통해 동학농민혁명 연구를 활성화하고 명예회복 및 기념사업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한편, 동학농민혁명을 단지 정리의 대상이 아닌 많은 사람이 혁명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역사문화 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사업을 진행했다.

 셋째, 국내외 문헌자료 조사·수집 및 연구문헌 목록을 작성했고 조사팀을 구성·운영했으며 동학농민혁명 논저목록집, 국역총서, 연표 및 문헌자료집 등을 책자로 발간했다. 아울러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의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종합지식정보시스템을 구축, 국사편찬위원회와 연계해 역사정보화통합시스템을 통한 대국민 정보 제공 서비스 기반을 마련했다.

 심의위원회는 활동범위를 더욱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학농민혁명을 지속적으로 현재화하고 한 단계 진전된 미래를 열어 가는 자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한 역사문화 콘텐츠 또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료수집과 조사연구가 선행돼야만 한다. 자료수집과 연구기능을 활성화하려면 자료센터와 연구기능을 수행하는 연구소, 전문인력 양성이 필수적이다. 자료 및 연구관련 조직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효율적 추진, 동학농민혁명의 의미와 가치를 세계적 자산으로 확산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직이다. 이는 국내·외 유사 기념사업의 사례를 비춰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역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같은 기간 청·일전쟁의 당사국이었던 일본과 중국 측의 연구도 대폭 활용, 비교분석하는 등 국제적인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해당 국가의 학자들과 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의 인식공유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원활한 자료수집과 양국 학술 관심사 공유 및 공동연구가 절실하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19세기 말 많은 국가의 농민들은 우리의 농민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19세기 말 한국·중국·일본·러시아 등 극동 4개국의 농민들과 그들의 삶을 비교 연구하는 것은 이후 전개되는 역사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심의위원회는 2009년 12월 5년 4개월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특수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설립돼 심의위원회 활동을 이어받은 것은 다행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현재 정읍 황토현전적지 내에 자리를 잡고 동학농민혁명의 대표기관으로서 기념사업과 연구조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말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외세를 끌어들인 조선 지배층의 선택은 청일전쟁을 가져왔고 식민지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은 우리민족 모두가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 됐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현재의 역사이기도 하다.

 2004년 동학특별법 제정과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의 활동은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그 후손들이 반란이라는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을 때 국가가 나서서 신원을 해주기 위한 법률을 만들고 그 법률에 따라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당사자의 명예를 회복시켜 줬다. 논란이 많았지만 유족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건강한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란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0년이 되는 오늘, 우리가 훨씬 큰 희망을 가져도 되는 이유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소인섭 기자
 이병규<문학박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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