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치료와 보험가입
정신질환 치료와 보험가입
  • 김형준
  • 승인 2014.02.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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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정신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건의 법 개정안은 가벼운 수면장애나 우울증 등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더라도 보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보험가입을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보험상품의 가입·갱신·해지와 관련해 정당한 사유 없이 정신질환을 이유로 피보험자를 차별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고 차별행위가 발생한 경우 이 행위가 정당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보험사 측에서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실제 진료현장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보험이나 진료기록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치료받기를 망설이는 경우를 자주 보아 왔다. 심지어 건강보험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고 진료비를 100% 일반진료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우울증이나 불면증 등을 이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가 늘고 있지만, 보험사의 관행으로 정신질환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여전히 높은 것도 사실이다. 젊은 환자들뿐 아니라 요즘에는 아주머니 환자들도 보험사의 관행에 대해 다들 알고 있다.

보험 상품이 워낙 많기 때문에 정신질환 치료를 이유로 보험가입을 거 당한 경험도 많고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질환이 그렇듯이 정신질환도 조기진단 조기치료가 상당히 중요한데, 일부 보험사의 이런 관행이 정신과 치료를 기피하게 만들어, 결국 개인의 건강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사회적으로도 국민의 정신보건에도 상당한 손실을 조장해 왔다고 보인다. 결과적으로 치료를 필요로 하는데 보험가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치료를 기피하는 것은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큰 불행인 것이다.

 정신의학, 즉 학문적인 입장에서도 모든 정신질환이 보험사에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질병이나 재해를 불러올 상황이 야기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보험사는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막연한 인식만으로 뚜렷한 의학적 근거 없이 가입을 거부해왔다. 이것은 마치 자주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폐암이나 폐결핵에 걸린 확률이 높으니 감기의 병력을 가진 사람은 보험가입을 블허하는 것과도 같은 논리이다. 의료현장에서 정신질환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환자가 이들의 보험 가입이 크게 문제 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많은 사람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나중에 취직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또는 회사에 알려져 진급 등의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정신질환 진료에 대한 의료정보 노출은 절대 있을 수 없고 법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설명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보험사가 알면 다른 데도 다 아는 것 아니냐’며 불신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고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도 많다.

문제는 정신질환이라고 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진료를 받았더라도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험사의 이런 규제로 인해 정신건강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보편적 인권이 침해받는 것이다. 이런 관행이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에서 보장하는 보편적 권리를 침해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유이다.

2012년 복지부의 발표에 의하면 전체 국민의 약 25%가 평생에 한 번은 정신질환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세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벌써 십 년 이상 지켜왔고 그 원인의 많은 부분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과 연관되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행과 편견이 이런 정신보건상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 온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시급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도 사회적으로 어떤 차별도 받지 않는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오래전부터 보험사의 이 같은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고 여러 차례 관련 공청회도 개최했었다. 그러나 보험사들이 강하게 반발하는데다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신의진 의원의 법안 발의를 계기로 정치권과 사회적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보험 가입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기피했던 환자들이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 환자의 인권이 향상되고 국민정신건강증진에 크게 기여하게 되길 기대해 본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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