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노래
생명의 노래
  • 이흥재
  • 승인 2014.02.1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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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뉴스가 요즘 교통사고 소식만큼이나 항상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화가 김병종은 1989년 늦가을 연탄가스중독으로 인해 오랜 입원과 수술 끝에 생명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생명에 대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생명을 노래하는 ‘날치’와 같다고 이어령 장관은 말한 바 있다. 물고기들은 바다에 살면서 바다를 보지 못하고 산다. 맨바닥에 사는 넙치나 고래 또한 바다를 모르며 바다에 산다. 그러나 넙치는 생존의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 아주 짧은 순간에 바다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며, 바다를 보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생명을 담보로 해야만 생명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데, 바다의 넙치처럼 살아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노래하는 작가가 김병종이다.

시간의 앙금이 느껴지는 누르스름한 닥종이 판에, 옛 시골의 흙담과 오래 묵은 방바닥 장판의 기묘한 향이 나는 화면, 그리고 그 위로 거칠지만 강렬한 필선이 느껴지는 <웃는 말> 등에서 이 생명의 노래가 들려온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의 정서나 추억은 평생 남아 있다. 중학교까지 남원에서 살았던 작가의 말투는 전북지역에서도 독특한 억양의 전형적인 남원 말씨이다. 하물며 생각, 삶, 모든 것이 평생 유년시절의 남원을 떠날 수 없는 모양이다. 그가 그린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선을 꺾으면 지리산이 되고 선을 쳐올리면 나무가 된다. 그 선을 흔들면 숲이 된다. 그것들이 어우러져 삼라만상이 되고, 화면의 사물들에 모두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된다. 단순히 화폭에 그려진 형상이 아니라, 그 조형들이 그림 속에 살아서 기(氣)가 통하고 생성이 되는 생명이 되며, 그들이 모여 생명 노래의 합창이 되는 것이다.

‘생명’이라는 어쩌면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이 세상과 인간의 근원이 되는 주제를 가지고 30여 년 일관해온 작가 김병종.

생명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사랑, 하나의 작품 그 이상을 추구하면서 그는 오늘도 어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 오묘한 생의 섭리를 깨닫게 하는 그의 조형은 예술이 닿을 수 있는 극점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그림은 정신이 담기는 그릇이요,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저만의 느낌과 생각을 절실한 대로 담고 비추어야 그 맛이 우러나오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제 기법, 자기 재료로 직접 주무르고 매만져 체득된 것만이 신뢰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생명을 실을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때때로 동양미술의 퇴락한 종갓집 종손이라고 생각한다. 수입된 사조가 아닌 우리의 시각, 아시아적 세계관으로 보편의 세계를 바라보려는 전에 없이 비장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잃었다고 한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전혀 몰랐던 그였기에 상여 뒤를 따라가며 자꾸만 흘러내리는 상복을 불편해했고 어색해했단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는 다시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

해질녘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아버지가 오셨으니 그만 들어오라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에 함께 놀던 아이들을 모두 각자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면 텅 빈 공터에 혼자 남곤 했다. 자라면서 “아버지 오셨다. 어서 들어와라.” 단 한 번만이라도 이 말을 듣고 싶었다. 어두워지는 텅 빈 놀이터에서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럴 때, 예수 그분은 어린 작가에겐 한없는 위로였고 따뜻함이었다. 채워주고 달래주는 그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대학에 연일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절, 이천 년 전 바람 불던 유대광야를 걸어간 한 남자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이 시대 서울의 이 최루탄 속에 서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바보 예수> 연작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10년 단위로 변해왔다. ‘바보 예수’에서 ‘생명의 노래’로 그리고 ‘길 위에서’ 시리즈이다. 기법으로는 수묵인물화에서 황갈색의 숲과 분청색의 물 시리즈이다. 그러다 화첩 기행의 화려한 여행이야기와 장엄한 우리 산수와 꽃 연작을 볼 수 있다.

몇 가지 패턴을 그리며 변화해온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의 주제로 관통하고 있는데, 그것은 생명이다.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이를 자기 나름의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표현 방식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작품에 담고자 한 정신과 뜻은 바로 “생명” 하나인데, 그 모든 것을 <김병종 30년, 생명을 그리다>에서 볼 수 있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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