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 논의의 본질적 구조
의료민영화 논의의 본질적 구조
  • 최낙관
  • 승인 2014.02.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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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지만 여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의료민영화’의 논의가 뜨겁게 과열되고 있다. 최근 들어 ‘박근혜 정부 의료영리화 정책 진단’, ‘국민편의 증진과 의료서비스산업 발전정책’, ‘의료민영화와 국립대병원의 역할’ 등 민감한 토론 주제를 가지고 국회토론회장은 여야 간 날 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토론회가 국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 마련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자칫 이념논쟁으로 변질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의료민영화’의 논의는 국가가 과연 사회보장으로서 국민의 건강권을 어느 정도까지 지켜줄 수 있는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모든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보편적인 의료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희망한다. 과연 이를 거부할 국민들이 있겠는가? 하지만, 국가주도의 독점적 건강보험체계로 과연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가 없다는 점이 쟁점의 본질이다.

 한국의 의료체제를 ‘의료시장’과 ’의료행위’라는 두 가지 하위영역으로 구분하여 볼 때, 의료의 생산과 전달은 시장경제원리를 선호하고 의료공급자에 대해서는 강한 규제를 행사하는 모순적 혼합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의 공적의료보험제도는 군부독재정권시절인 1976년 도입되었고 1988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 실시되었지만 모든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강제가입’과 모든 의료기관이 요양기관으로 편입되는 ‘강제지정’은 제도도입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는 두 가지 원칙이다.

이러한 방식의 의료체계와 건강보험은 현존하는 공산국가를 제외한 거의 유일무이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즉 한국의 의료와 건강보험제도는 전적으로 발전국가의 통제 하에서 국가가 모든 의료수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를 그 특징으로 갖고 있다. 즉 국가는 사회보장으로서 건강보험을 저수가(공급자)-저급여(국가/관리자)-저부담(수요자)이라는 틀을 가지고 운용하면서 공급자에 대한 가격통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일련의 통제 하에서 국민들의 의료수요는 급증하고 이에 상응하여 민간에 의한 의료기관 설립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한편, 국가에 의한 공공의료기관의 설립은 상대적으로 약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은 국가에 의한 강제 공적의료보험이 도입된 1976년 이전에는 병상수를 기준으로 공공병상(53.2%)이 민간(46.8%)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했었지만, 그 이후 국가에 의한 공공의료기관은 점차 민간의료기관에 수적인 우위를 내주었고 그 격차는 점점 심해져, 현재는 병상수 기준으로 민간병상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심각한 불균형 구조를 갖고 있다.

 만일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의료민영화가 걸림돌이 된다면 국가는 공공의료기관을 설립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허점은 있다. 의료공공성을 지향하는 대표적인 영국의 NHS도 제도 내에 사적의료체계가 병존하고 있어 제도경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영국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의료개혁이 진행되고 있고, 그 분명한 개혁의 방향은 분권화, 경쟁, 소비자 선택의 존중, 공급의 자율성 제고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촉발된 의료민영화 논의가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국민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합리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칫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의료민영화 논의가 정략적 이념논쟁이 아닌 제도개선을 위한 대안적 논의가 되길 바랄 뿐이다.

 최낙관<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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