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다이모니아와 좋은 삶
에우다이모니아와 좋은 삶
  • 원용찬
  • 승인 2014.01.14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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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는 1월은 언제나 성스럽다. 지난 허물을 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발걸음을 옮기는 시간에 과연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경제학에서 좋은 삶에 대한 해답을 얻기는 어렵다. 최소비용으로 최대만족을 얻는 효율과 합리성을 좋은 삶의 기준으로 여길 뿐이다. 그래서 경제학과 철학이나 윤리적 덕목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되어 왔다. 경제학을 인간의 행복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경우에 그리스의 철학자이고 모든 학문의 뿌리가 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시발점으로 삼는 학자도 적지 않다.

얼마전 기말고사 때의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연구실 가까운 커피 샵으로 들어서는데 언제나 앞자리에서 열심히 수업 받고 있는 학생이 반갑게 일어선다. 시험기간이라 테이블은 노트북과 시험공부 자료로 어수선하였다.

“그런데, 교수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가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아무리 시험범위에 속한다지만 느닷없는 질문에 선뜻 명쾌하게 답해줄 수가 없었다. 잠간 망설이다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딴청을 부렸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 자체가 아닐까?”

“……”

“지금 스스로 뭔가를 앎을 구하고 지혜를 얻는 과정,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네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고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실천하고자 하는 현재의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럼 크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군요?”

“그렇지 다만 시험 공부해서 학점 높게 받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전제가 꼭 붙어야지 않을까? 수업시간에 이야기한 것처럼 네 자신에 깃든 영혼을 끊임없이 어루만지고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다시 물었다. “혹시 너의 영혼이 어디 있는지 아나?”

이번에도 어리둥절하였다. 잠간 웃으면서 농담으로 한마디 하였다.

“너의 가장 부족한 부분, 그러니까 단점에 영혼이 깃들여 있다고 보면 될 거야. 그래서 서로가 단점을 사랑해주면 영혼이 서로 마주친다고도 하네!”

다음날 시험문제에 에우다이모니아가 나왔다고 해서 그 학생에 대해서 특혜는 아닐 것이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은 에우다이모니아에 있음이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좋은(eu) 영혼 또는 신성(daimon)의 합성어이다. 그에게서 에우다이모니아는 인간에 깃든 영혼과 신성을 발휘하여 최상의 좋음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삶이었다.

오늘날 경제학의 어원이 되는 이코노믹스(economics)도 사실 따지고 보면 기본적인 경제 활동과 더불어 영혼과 신성을 발휘하는 윤리적 가치를 함께 이루고 좋은 생활을 영위하는 가정경제, 즉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나왔다. 그런데도 지금의 경제학은 윤리와 철학적 덕목을 거세하고 오직 경제의 물질적 생활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생활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경제학자들 중에는 좋은 삶의 기초가 되는 기본재로서 재산, 건강, 존중, 안전, 신뢰, 사랑 등을 거론하고 어떤 학자는 인간의 구체적인 역량개발까지도 행복의 목록에 포함시킨다. 그렇지만 이런 기본재도 결국은 에우다이모니아를 목표로 하는 최상의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다.

최상의 좋음을 무한히 추구하기 위한 나머지 모든 활동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수시로 하는 건강진단은 몸의 좋은 상태를 유지하여 자신의 존재의미를 실천하고 좋은 삶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건강이 최선의 목표는 아닌 것이다.

최근 국가별로 중산층의 기준을 설문조사한 결과가 회자되었는데 한국은 아파트, 월급, 자동차, 예금 잔고들이 주로 척도가 되었다. 이와 달리 다른 나라는 페어플레이, 자신의 확고한 주장,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봉사, 부정과 부패에 대한 저항 등 무형적 자산이 중산층의 좋은 삶을 대변하는 기준이 되어 새삼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작년에 「과연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사람들이 쳇바퀴를 도는 무한경쟁으로부터 벗어날 각자의 고유한 출구를 보다 쉽게 조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으로, 가령 돈벌이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기게 속할 것이다.”

일상적인 삶은 물론 좋은 삶을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일단은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확고히 하고 행복을 위한 무형자산을 키우면서 스스로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원용찬 <전북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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