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의 시대 : 시대정신의 요구와의 단절
불통의 시대 : 시대정신의 요구와의 단절
  • 진성준
  • 승인 2014.01.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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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첫 기자회견을 했다. 취임 316일째에야 비로소 가진 회견이다. 청와대는 질문할 기자들을 미리 결정했고, 질문 역시 사전에 모두 취합했다. 대통령은 준비된 원고대로 자신의 견해를 설명했다. 국민은 가식 없이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청와대는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2014년 신년 기자회견 최대 화두가 ‘소통’이었던 만큼,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소통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 무척 신경을 쓴 눈치다. 박 대통령은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과 낮은 목소리를 유지했고 ‘1분도 아깝다’는 표현을 써가며 의욕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2013년 4월 ‘정부조직 개편안 지연에 대한 대통령 담화문’ 발표 당시 굳은 표정과 격앙된 목소리로 일관했던 모습과는 대조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날 회견 내용은 소통과 거리가 멀었다. 박 대통령은 “기계적 만남이나 국민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소통이냐, 그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 한다.”라고 했다. 또한 “비정상적인 관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한 것을 소통이 안돼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소통’의 모양은 갖추겠지만, ‘소통’의 능력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15년 전 교통사고 사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준 ‘민원해결’을 소통의 사례로 들었다. 대통령에게 소통은 권력자가 민초들에게 베푸는 시혜나 배려, 민원해결이 전부였다.

불통의 시대로의 회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관심이 온통 갈등과 투쟁에서의 승부에만 있는 듯하다. 박근혜 정부가 50%를 넘나드는 지지율과 영남, 강경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충성스러운 지지층을 과신한 나머지 ‘진압형, 돌파형’ 국정 운영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 대통령의 독선과 독단이 지속할 경우 국민적 분노는 결국 폭발하였고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신년 기자회견에 재확인된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은 단순히 국민이 듣고자 했던 국정원 불법대선 개입에 대한 입장이나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공권력을 투입하여 강제 진압하는 강압적인 태도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낸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불통’의 내용이다. 박 대통령의 ‘불통’은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실천하기로 약속했던 국민들의 열망 그리고 시대정신의 요구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구호는 “박근혜가 바꾸네!”였다. 그보다 앞서 박 대통령은 2009년 당시,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설을 통해 “세계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을 지속하려면 원칙(규율)을 새롭게 확립해야 한다”, “자본주주의 핵심가치인 ‘자기책임의 원칙’이 지켜질 때에 자본주의도 지켜질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선 당시 야당은 박 대통령의 ‘중도행보’에 대해 속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권 1년 만에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입장을 싹 바꾸어 “규제완화”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본질을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활성화를 내걸고 “과감하게 경제 패러다임을 현실에 맞게 바꿔 나가고 공공부문부터 규제를 풀도록 하겠다”고 역설했다. 당일 오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투자 활성화를 위해 더욱 과감하게 규제를 개선해 나가고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좋은 기업환경을 만드는 데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2월,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던 김종인 전의원의 새누리당 탈당에서 이미 예견된 바도 있지만,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은 새해 대통령 기자회견으로 종언을 고한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갈망하는 국민 대다수의 기대를 실현 시켜 줄 것이라 믿었던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의 옹호자임을 스스로 고백했다.

지난 1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재벌과 관료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우리나라 GDP의 13%에 해당하는 155조원에 대한 투자를 약속한 30대 재벌총수들과 재벌중심의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맹신하는 경제관료만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최근 한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에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열풍은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여전히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유효함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국민도, 시대정신도 변하지 않았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각종 경제수치가 올라감에도 양극화의 심화, 경쟁의 격화, 불안의 가중은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다. 중산층은 사라지고 극소수의 부유층과 절대다수의 빈곤층으로 사회가 갈라지고 있다.

결국, 문제는 경제이고, 정치이다. 그 기저에 소통과 신뢰가 있는 것이다. 소통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간단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득권층과 관료 세력과만 대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민과 야당은 복잡하고 어려운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2009년 ‘원칙 있는 자본주의’, 2012년 ‘경제민주화’를 외친 박근혜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이제 6개월 후면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3개월의 공과를 논하기에는 단순히 시기적으로 이를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또 바뀐 박근혜’에 대해 국민의 준엄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불통과 특혜’냐, ‘소통과 안녕’이냐를 두고 우리 국민이 ‘원칙’을 정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진성준<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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