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를 읽으며 전북을 생각하다
논어 를 읽으며 전북을 생각하다
  • 임규정
  • 승인 2014.01.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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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오늘날 『논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본디 책을 읽음에 있어 저자의 개인사를 반영하는 것이 좋은가는 비평 담론의 중요한 화두이건만, 나는 아직 여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치기 넘치던 어린 시절에는 저자의 인생을 논외로 하는 것이 책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도록 도와주고, 그것이야말로 책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이라고 확신했으나, 이제는 저자의 개인사를 꿰뚫을 때라야 비로소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특히 『논어』를 읽을 때면 공자의 인생을 젖혀두고 이 책을 읽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론 『논어』를 공자가 직접 저술한 것은 아니나,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가 남긴 말과 행적을 편집했다는 점에서 『논어』의 실질적인 저자는 공자라 하여도 무방하겠다.

공자는 참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 자신의 정치관을 펼치고자 천하를 떠돌았으나 아무도 그를 등용하지 않았고, 그의 아들은 아비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아내는 남편의 포부를 알아주지 않았다. 말년에야 교육에 전념하였건만 빛나는 제자들은 대개 공자보다 일찍 죽었다. 범인의 인생이 그러했다면 원망이나 체념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크게 이상치 않을 일이다. 그러나 『논어』에서 패색 짙은 삶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배우고 늘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를 읽지 않은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한 이 구절이 바로 『논어』를 시작하는 글이다. 『논어』가 제자들의 기억에 의해 편집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를 공자가 평소 가장 강조하였거나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평생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제 포부도 펼치지 못했던 사내가 도대체 무엇이 기쁘고 즐거웠단 말인가?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공자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가다듬는 일에 평생을 투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실현하는 것은 천운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운이 따라주면 좋은 것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에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을 즐겼고, 남의 인정이 동반되지 않더라도 만족할 줄 알았다. 그러니 그는 군자로서 훌륭한 삶을 살았던 셈이다.

『논어』를 읽을 때마다 시대를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공자의 삶이 이 책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날 『논어』는 불세출의 명작으로 평가된다. 『논어』로부터 시작된 유학은 천년이 넘도록 동북아시아를 지배하는 정치 철학이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진 역작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 스산한 가을밤에, 나는 『논어』를 다시 읽으며 나의 고향 전북을 떠올린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적지 않은 피해의식, 패배의식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공업생산을 위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여 산업화 시대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패배의식, 피해의식이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공자의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남이 가진 것, 나아가서 남의 이목에서 벗어나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전라북도가 지난 세월동안 산업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산업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이전의 상품은 폐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가 아무리 많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식량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 식량을 생산해내는 중심지에 살고 있다. 그 자부심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우리는 한반도의 식량을 책임져오지 않았던가? 그 긴 세월 동안 우리 전북이 한반도의 파워플랜트, 한반도의 심장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공자에게서 배워야 한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공자의 힘은 그의 인품이자 학문적 성취였다. 그는 세상의 변화와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았기에 꿈을 향해 계속 정진할 수 있었다. 우리도 맹목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좇는 태도를 잠시 버려두고, 이 산업화 시대에 대한 선망을 잠시 제쳐 두고, 우리가 가진 것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힘이 생길 것이다.

임규정 <군산대학교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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