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여행
무전여행
  • 진동규
  • 승인 2014.01.0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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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전여행,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인가. 용기 있는 자들 말이지 아무나 돼지 발톱 구두끈을 맬 수는 없었다. 여름방학이면 용기 있는 친구들이 꼭 있었다. 시장 뒷골목에서 구하는 것이었지만 군인들의 워커를 돼지 발톱이라 불렀다. 그 돼지 발톱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열차의 중간쯤 타야 한다. 그리고 차표 검사가 진행되는 것을 살펴야 한다. 슬슬 밀리다가 열차가 쉬는 역에서 검표원을 따돌리고 열차 칸을 건너가면 되는 것이다. 도둑차를 타는 것이다.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기차가 속도를 줄일 때 뛰어내려야 시간을 버는 것이다. 뛰어내리면서 나뒹굴어 바퀴 밑으로 말려들지 않으려면 달리는 기차와 같이 뛰어 주어야 한다. 기차가 플랫폼까지 들어서고 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이다.

사뭇 전쟁놀이였다. 벌건 백주에 낯 내놓고 선전포고하듯이 나 잡아보라 하고 뛰는 것이 아닌가. 닭서리의 긴장감과는 다르다. 닭서리는 야음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뛸 일은 없다. 닭 주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닭과의 싸움이다. 손을 겨드랑이에 깊이 묻어 따뜻하게 하면 된다. 따뜻한 손이 제 가슴살을 받쳐주면 그대로 따라준다. 홰를 감아 쥐고 있던 발을 그냥 풀어버리는 것이다.

닭서리나 도둑 기차나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는 같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우리가 할 수 있는 놀이라고는 그보다 더한 것이 없었다. 소나무 껍질까지 벗겨 먹던 시절이었으니 전쟁 중의 통금이 시행되던 시절이었다. 흉흉했던 산빨치들의 보투행각을 재미 삼아 이야기하고 그랬던 때였다.

교통수단이 열차뿐이었으니까 누구 하나 구차한 소리 내뱉지도 못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밤새 달려 아침 안개 자욱한 도착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온통 안개에 휩싸여 꿈속의 딴 세상을 연출하곤 했다.

기찻길은 언제나 종착역이 있다. 종착역은 어디일까 하는 호기심은 여행자들을 설레게 하는 덕목이 된다. 여행자들은 그렇게 공주가 되고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기사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유리성은 없다. 이미 각오하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유리성이 없으면 어떤가. 그 종착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닌가. 유리성보다도 더 아름다운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를 벗어나자. 작은 목로주점이 있었다. 묻고 말 것도 없이 막걸리에 삶은 꼬막을 한 바가지 내놓았다. 이 작은 간이역을 종착역으로 삼아버린 것은 얼마나 잘한 일인가. 낯선 이방인들을 손님처럼 맞이해주는 옆자리의 눈빛은 얼마나 따뜻했던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다는 여관방은 참으로 유리성보다 아름다운 밤을 선물하지 않았던가.

종착역도 간이역도 숨을 곳이 못 되었던가 보다. 철도 노조원들은 절간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오늘 신문에는 자수하러 들어온 간부들 영장을 청구했다는 기사다.

기찻길은 내 추억의 길이다. 이렇게 어영부영하다가 기차를 몽땅 뺏겨버리는 것 아닌가 싶어서 역으로 쫓아갔다. 경쟁을 시킨다고 조각조각 나누어 본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다가 알짜만 좋아하는 재벌들 그 탐욕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민자유치 어쩌고 하다가 이상한 그물망으로 끌어가 버리면 끝이 아닌가.

잘 나간다는 KTX를 탔다. 할인 혜택이 일요일은 없단다. 적자 운운하는데 옛날에 도둑 열차도 탔는데, 더라도 보태주자. 국민 열차가 적자라면 국민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빼앗기고 나면 어디 세금으로 되찾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기차야, 기찻길아. 눈 맞으며 기다리던 간이역아, 내 그리움아. 네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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