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고닥이다
사람이 고닥이다
  • 이동희
  • 승인 2014.01.06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래되어 우스갯소리로 약발이 떨어질 만도 하지만 들을수록 미소 짓게 하는 유머가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어에서 유래됐음직한 ‘와이담[淫談]’이라는 음란한 이야기야 옮길 거리도 되지 못하게 민망하지만, 사투리-방언에 관한 농담은 들을수록 재미있다. 그 재미는 단순히 유쾌한 농담을 넘어 인간관계에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웅변하는 듯하다.

 사투리-방언을 소재로 하는 우스갯소리는 전라도와 경상도 방언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지만 한 번 더 음미해 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새해에는 불통의 시대를 넘어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도농 간, 노사 간에 소통의 맥락을 잘 짚어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하고 대접받는 시대와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뜻이다.

 전라도 청년이 군입대하여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이 초년병이 야간순찰을 나갔다가 아군 순찰병과 맞닥뜨렸다. “암호?” 얼떨결에 대답한다는 것이 “쇠때!”라고 했겠다. 정해진 암호 ‘열쇠’와 다른 것으로 보아 적군임을 직감한 순찰병의 사격에 죽어가며, 이 전라도 청년은 “쇠때도 열쇤디~”했다 한다.

 경상도의 한 고등학교에 ‘안덕기’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수업시간에 떠들어 선생님이 일으켜 세웠다. “너 이름이 뭐야?” “안득깁니더” “이 자식 봐라? 이름이 뭐냐고?” “득깁니더!” “그래, 듣기면 말해봐. 이름이 뭐야?” “안득깁니더!”(임범「사투리」한겨레) 이 학생이 스승님을 희롱한 죄를 물어 귀싸대기께나 맞지 않았다면 이상할 일이다.

 ‘방언은 억압받은 하나의 언어이며, 국어는 정치적으로 성공한 하나의 방언일 뿐이다.’(이상규『방언의 미학』)고 하듯 방언이 사투리는 아니다. 사투리는 국가적 강제 규정으로 정해진 표준어에 어긋난 말이란 뜻이지만, 방언은 그 지역의 고유한 언어를 말한다. 사투리는 분별없이 쓰지 않도록 삼가야겠지만, 방언은 자연스러운 삶의 언어다.

 필자는 시문학을 필생의 업으로 삼으면서 말의 쓰임이 갖는 묘미에 무릎을 칠 때가 많았다. 필자가 강의하는 문예반에 습작을 제출하면서 함께 보내온 회원의 편지가 이랬다. “습작이라고 열심히 썼지만 시답잖기만 합니다.” ‘시답잖다’는 말이 얼마나 귀에 앵(안)기던지, 당장 사전을 찾아보았다.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아니하다’고 풀이되어 있다. 이 말을 쓴 회원이 ‘시답잖다’를 ‘詩답지 않다’고 썼던, 아니면 국어사전의 친절한 풀이를 생각하고 썼건 절묘한 말 부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시답잖다’는 말의 뿌리가 詩라고 썼으나 만족스럽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쓰인 詩라는 뜻에서 유래됐음직하다.

 농업이 찬밥 신세가 됐을지라도 농촌의 겨울은 농한기다. 바쁜 농사일손을 잠시 멈추고 한가롭게 겨울철이 주는 여유를 누리는 때다. 농사철이면 어림없을 농촌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추렴 떡을 해먹는다든지, 농한기의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때가 바로 겨울 농한기다. 그럴 때 아낙네들이 그런단다. “늘 시안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라-경상 지역에서는 ‘시안’이라면 겨울로 통한다. 국어사전은 친절하게도 ‘시안’이 ‘歲― 안’에서 왔을 것이라며, ‘시안→세안’이라 표기하고, ‘해가 바뀌기 전의 겨울 동안’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런 뜻풀이를 넘어서 언중은 겨울이 지닌 의미를 함축하여 부려 썼던 말이 곧 ‘시안’이다. 그래서 ‘시안’에는 ‘時安-농한기라 편안한 때’라는 의미가 들어 있기도 하고, ‘時寒-계절적으로 추운 때’라는 절후도 포함하고 있으며, ‘歲안-해가 바뀌는 동안의 겨울’을 뜻하는 등 말의 용처를 드넓게 부려 썼던 것이다. 이것이 곧 방언의 살아 있는 힘이다.

 말을 작위적으로 부리는 권력자들의 영혼 없는 말들이 시대를 어지럽히고, 사회를 혼탁하게 한다. 국민과 원칙과 민주주의를 말하는 권력자의 언어와 이를 받아들이는 언중 사이에 방언의 골이 깊이 파여 간다. ‘국민’은 헌법에 명시된 주권자에서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원칙’은 짐의 말이 곧 법이라는 듯이 변칙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무자비한 공권력으로 주권자를 옭아매는 제도로 추락하고 있다.

 전라도에서는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훈계하며 ‘사람이 고닥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인생행락 백년이 젊은 눈으로 보면 길고 먼 것 같지만, 인생을 살만큼 살아보니 그 백년이 그리 길지 않다는 뜻이다. 하물며 무에서 왔다가 다시 무로 가는 우주의 나이로 본다면, 권력의 시간은 ‘고닥’이고 말고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