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와 동학농민혁명
지방자치와 동학농민혁명
  • 조배숙
  • 승인 2014.01.0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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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오년인 올 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동학농민혁명 120돌을 기념하여 공모한 슬로건으로 ‘사람, 다시 하늘이 되다’가 선정되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우리가 의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자 함이라.”

 120년 전 동학농민혁명은 바로 우리 고장 전라북도에서 전봉준의 격문을 신호탄으로 들불처럼 온 누리에 번져 나갔다.

 1차 봉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동학농민군은 첫 전투인 황토현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봉기 한 달 만에 호남 일대를 장악했다. 이어 당시 ‘호남 제일성’이라 불리던 전주성마저 점령한다.

 전주성이 함락되자 무능한 정부는 외세를 끌어들여 결국 청?일 양군이 출병하는 사태를 야기한다. 나라가 청?일 양국의 각축장이 될 우려를 의식한 농민군과 관군은 전주 화약을 체결하고 자진 해산하여 집강소를 설치한다.

 민과 관 합의로 설치된 집강소는 역사상 최초의 주민 자치기구로서 나주와 무주 등을 제외한 전라도와 인근 일부 지방 53개 고을에 있었다. 전봉준은 이러한 집강소를 총괄할 대도소를 전주의 옛 전라북도청사 자리인 전라감영에 두었다.

 집강소에는 농민군 중에서 집강을 두고 그 밑에 서기와 집사 등 임원을 두어 행정사무를 분담케 하였다. 집강소는 각 고을의 치안과 행정 등 사실상 민정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농민군이 설치한 집강소는 우리나라 근대 민주정치의 효시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행정 업무를 주민이 직접 수행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농민군은 집강소를 통해 전주 화약에서 합의한 폐정개혁안을 시행한다.

 폐정개혁안의 내용은 첫째, 부패한 봉건 지배층의 징벌 둘째, 봉건적 신분 제도의 철폐 셋째, 봉건적 폐습의 철폐 넷째, 새로운 관리 임용 제도 다섯째, 농민의 경제적 지위 향상 여섯째, 친일파 응징 등이다. 양반과 상민이 유별하던 시절에 천지개벽과 같은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조혼 금지와 인신매매 금지, 과부의 재혼 자유 등 당시로서는 상상키 어려운 여성 인권의 근대적 시각을 제시하고 시행하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동학농민혁명이 여성인권 신장의 혁명적 전기를 마련했음에도 이에 대한 평가는 다소 미흡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이처럼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고장 전라북도를 기반으로 지방자치의 원형을 이루었으며 여성의 권리와 지위를 높이는 등 근대로 가는 문을 활짝 열었다는데 매우 큰 의의가 있다.

 전봉준은 유고시로 ‘운명’을 남겼다. “때를 만나서는 천하도 내 뜻과 같더니 / 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어쩔 수 없구나 /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이 무슨 허물이랴 / 나라 위한 일편 단심 그 누가 알리.”

 2014년은 동학농민혁명이 두 갑자 되는 해이자 6?4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기도 하다.

 전라북도 도민이라면 누구나 동학의 후예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목숨 바쳐 이루고자 했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120년이 지난 오늘에는 과연 이루어졌는지 새삼 돌아봐 진다. 동학농민군들이 혁명적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여망을 우리 후손들이 기루며 그 숭고한 염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지 않겠나.

 새해 새날을 맞으며 낙후 전북을 되뇌이는 절망의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동학정신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전라북도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적어본다.

 조배숙 / 변호사·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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