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소설 당선-이글의 ‘숨은귀’
[신춘문예] 소설 당선-이글의 ‘숨은귀’
  • 송민애 기자
  • 승인 2013.12.27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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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귀

-이글 作 

  1

 칼과 가위 사이에서, k는 며칠째 망설였다. 칼과 가위 둘 다 용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귀를 순식간에 자르려면 잘 드는 칼, 아니 가위? 결정은 쉽지 않았다. 피 맛, 피 냄새는 나중 문제였다. 문제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귀를 잘라와 삼겹살과 섞어 불판에 구워먹을 때 한눈에 구분이 될까. 자를 때 왼쪽 혹은 오른쪽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녀의 비명이 들린다 해도 바로 잊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소릴 잘 듣는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그게 역시 k는 궁금했다. 다행히 달도 뜨지 않은 골목길은 어둡다. 더구나 오고가는 행인도 드물다. 정말 좋은 분위기 아닌가. 늦은 저녁 혼자 ‘악어’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집에 돌아오던 어둔 골목길에서, 문득 떠올린 생각이었다. k는 마음속에 단검 한 자루와 가위를 품은 채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밤길 귀가 여성 ’귀‘를 잘라간 엽기사건’

늦은 밤에 귀가하던 직장인 김아무개 양(23세)의 ‘귀’ 한쪽을 괴한이 흉기로 잘라간 사건이 발생······. 잉크 냄새 맡으며 조간신문을 펼쳐들었다가 이런 기사를 읽게 된다면 독자의 기분은 어떨까. 왜 하필 귀를 잘라간단 말인가. 무척 궁금해 할 것이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냐? 더구나 피해 여성이 뒤에서 갑자기 당한 일이라 범인을 보지 못했다면? k는 잘라 온 귀 한쪽 넣어둘 주방에 냉장고를 돌아봤다. 혹시 주방 또는 냉장고에 피 냄새가 남을까. k는 줄곧 이런 상상을 하면서 야릇한 기분에 빠졌다. 달콤한 흥분 속에 칼과 가위 중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날 조간신문 1면 하단 광고에 크게 실린 사진이 k의 시선을 붙잡았다.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250일 넘게 혼자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여성노동자가 찍힌 사진이었다. 얼굴 윤곽은 뚜렷하지 않았다. 카메라 거리가 너무 멀었다. 해고자들의 절박한 호소광고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순전히 귀머거리를 향한 호소였다. 귀를 막고 귀머거리처럼 듣지 못하는 흉내를 내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해고자들의 외침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목쉰 듯 낮은 울림으로 우렁우렁 그들은 외치고 외쳤다. 함께 살자! 그들의 부르짖음이 너무 간절하게 느껴져 k는 가슴이 잠깐 동안 무거웠다. 문득 그동안 잘 들리지 않는다는 핑계로 누군가 고통 속에 토하는 신음 소리를 귀 닫고 모른 체 한 적은 없는가. 어느 땐가 어둔 밤길, 혼자 귀가하던 중 먹빛 골목에서 다급한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도, 무서워 모른 척 한 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봤다.

k는 가슴에 깊숙이 뿌리박은 차가운 소리가 언뜻 생각났다. ‘가는 귀 먹었어? 귀가 어둡냐? 귀가 너무 작아 잘 안 들려?’ 많은 날이 지났어도 아버지의 힐난은 끊임없이 k를 괴롭혔다. 무슨 사연인지 그의 귀는 젖먹이 아이 정도 상태에서 자라기를 멈추어버렸다. 키와 몸집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에 걸맞게 커졌으나 귀는 그러질 못했다. 그의 귀는 보통 어른들 귀의 절반도 안 됐다. 귀를 작게 갖고 태어난 것이 전부 k 탓인 것처럼 타박만 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싫어하고 미워한 것이 k인지 작은 귀인지 궁금할 때도 있었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어 칼이나 가위로 베어내고 자를 수 없는데 쥐 귀 같다는 소리는 k의 가슴에 깊이 박혀 버렸다.

2

군 제대하던 그해 봄, 복학신청을 하고 흐린 날씨에도 k는 시 외곽에 위치한 시립공원묘지를 찾았다. 강원도 화천 전방부대에 배속된 그해 영하 20도의 혹독한 겨울을 넘길 때 어머니가 급한 길 떠나 듯 먼저 묻혔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해, 입대 후엔 한 번도 이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기를 k는 바라지 않았는데, 아버지 역시 어머니 옆에 나란히 눕고 말았다. 정년하시고 5개월만의 날벼락 같은 죽음이었다. 그가 군복무 중 급작스레 두 분은 그렇게 묻혔으므로, 무슨 말도 들을 수는 없었다.

k는 가져간 소주를 술잔에 따라 어머니 무덤 묘비 앞에 올렸다. 그리고 두 번 큰절을 하였다. 어머니, 아들 무진이가 왔어요. 저를 많이 기다리셨죠? k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저 무진이에요. 제 말 들리세요? 그러나 어머니의 말소리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도 제 말 들리세요? 저만큼 아래쪽 아버지 무덤을 내려다봤다. 역시 아버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뭐라고 소리 질렀을 것 같았다.

k는 군 입대 전 부엌칼로 귀를 자르겠다고 화를 내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 다니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가위 눌리는 꿈을 꾸다 식은땀도 흘렸다. 아버지의 욕심은 아들이 의대나 법대에 진학하기를 바랐다. 저 자식 귀가 먹었어, 쥐 귀처럼 너무 작아 통 말귀를 못 알아들어, 아버지는 걸핏하면 화를 냈었다. 하지만 k는 실력이 그에 미치기엔 부족함을 잘 알았다. 지방공무원으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는 자신의 기대를 버리고 다른 길을 택한 그를 차갑게 경멸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아들의 귀가 보통사람 보다 너무 작다고 한탄했다. 저 자식 귀는 어디로 숨었어. 귀가 저리 작으니 무슨 소릴 제대로 듣겠냐? 어릴 적 대수롭지 않은 잘못에도 아버지는 화를 냈다. k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고 지독히도 싫었다. k는 성인이 된 뒤에도 거울을 볼 때마다 쥐 귀라고 하던 아버지의 말이 아프게 머리를 때렸다. 귀가 작아 남 말을 통 못 알아듣고 고집불통이 돼버렸다고 소리치던 아버지. k는 그 소리를 자신의 작은 귀로 들었고 오래도록 기억했다. k는 귀를 막고 싶었다. 쥐 귀처럼 작다는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쥐 귀 같이 생겼으나 쥐처럼 밝은 청력을 갖지 못했다. 말하자면 듣지 못하는 귀는 온전히 귀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귀를 먹었다는 말은 맞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듣기 싫은 소리 들을 때가 어디 한두 번인가. k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듣기 싫다고 귀를 막고 안 들을 수도 없는 것이다. k의 말을 상대는 잘 알아들었다. 하지만 소리는 가물가물 들리는데 상대의 말을 k는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특히 많은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더욱 심했다. 대학에 진학하고부터 유독 주변의 시선이 모두 그의 귀만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작은 귀를 숨기고 싶었다. 여자들처럼 머리를 길렀다. 그래서 두 귀는 긴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남의 시선에 쉽게 띄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가까이서 대화는 가능했지만,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머리카락이 벽처럼 가려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도 잘 듣지 못하는 그의 귀는 자주 부재중인데, k의 말을 듣는 상대는 k와 연결되어 있었다. 양방향 통행이 못되고 일방통행이었다. 연결이 필요했다. 그럴수록 점점 타인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어 밀려드는 두려움이, k를 한동안 힘들게 했다. 되도록 사람들 많은 장소를 k는 피해 다녔다. 말을 잘 들을 수 없어 상대의 생각을 알 수 없고, 생각을 알 수 없으므로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어긋나는 일이 잦은 것은 너무 당연했다.

두 귀가 속귀 고막에도 아무 이상 발견할 수 없다는, 전문병원의 진찰 결과를 k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중이염 한 번 앓은 적 없고, 귀를 다친 일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많은 사람 앞에 있거나 긴장하면 더 심했다. 전문의와의 상담은 k를 우울하게 했다. 이 긴 머리카락이 귀를 숨겨주기도 하지만 한편 귓구멍을 막기도 합니다. 의사는 여자들 머리처럼 목까지 내려온 그의 긴 머리카락을 제치고 작은 귀를 만졌다. 참 귀가 작군요, 라고 말하고 싶은데 참는 표정이었다.

젊은 의사는 <스트레스성난청>이라고 종이에 써서 k에게 보였다.

어린 시절 잠 안 오는 밤이면 어머니는 아주 재미나게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k는 가슴 졸이며 듣다 잠이 들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입대 후 신병시절 고참병의 말이 잘 안 들려 k는 자주 되물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럴 때 고참병은 안 들려? 귀 먹었냐? 정강이를 번번이 걷어차였다. 저 새끼 귀는 왜 저리 생기다 말았냐? 내무반 생활 중에 고참병들의 밤낮 없는 놀림을 참아내기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고통으로 잠 못 드는 밤이면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잠들기 전 들었던 재미난 옛이야기를 k는 생각했다.

k는 어머니의 옛날이야기 들려주던 말소리보다 정겨운 소리를 여태껏 듣지 못했다. 지금은 들을 수 없는 그 소리가 기억에 남아 있어 이따금 되살아 들려왔다. 유충열전, 전우치전, 홍길동전, 콩쥐팥쥐, 깊은 연못가에 사는 예쁜 처녀가 어느 날 밤 찾아온 귀공자와 정을 나누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귀공자는 연못에 사는 커다란 지렁이였다. 처녀는 잉태하여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훗날 장군이 되어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 방구장이 며느리 이야기도 생각났다. 어린 시절 끝도 없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술술 들려주던 어머니였다. k에게 자장가 소리였던 어머니의 옛날이야기. 그 많은 이야기를 어머니는 어떻게 누구에게 들어 알았는지, k는 지금도 궁금했다. 그리고 k는 어머니가 글을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었던 사실을 불현듯 군에 있을 때 기억해냈던 것이다.

k가 군에 있을 때 어머니는 서툰 글씨로 아들에게 하소연하듯 편지를 썼다. 처음 어머니는 한글을 k한테 배우셨다. ‘ㄱ ㄴ ㄷ’부터 ‘가 겨 거 겨’를. 초등학교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k와 함께 어머니는 국어책과 공책을 펴놓고, 거의 매일 쓰고 소리 내어 읽으며 익히셨다. ‘ㄱ’을 쓰고 ‘기역’, ‘ㄴ’을 쓰고 이 글자는 ‘니은’이라고, 아들이 한 말을 어머니는 더듬더듬 참 열심히 따라 외우려고 애쓰셨다. 어머니의 글공부는 k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계속됐고, 그리고 k는 죽 잊고 지냈다.

군입대하여 강원도 전방부대에서 맞는 그해 첫 겨울은 일찍 왔다. ‘내 아들 무진에게’. 어머니는 막 글을 배운 초등학생처럼 서툰 연필글씨로 맞춤법 띄어쓰기 상관없이, 말이 아닌 글말로 쓴 편지를 보냈다. 글자 한 자 쓸 때 10초는 걸려 쓰셨을 어머니의 모습이 k의 눈앞에 떠올랐다. 처음으로 네게 편지를 쓰니 참 기쁘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어미는 잘 있다. (처음니개 핀지스니찬기부다 을미나 고상마느냐 애미잘잇다) 꼭꼭 눌러 잘 쓰려고 애쓴 흔적 역역한 편지를 읽다가 숨이 막힌 듯 했던 기억이 났다. 읽고 다시 읽다가 k는 자신이 울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네가 걱정되어 밤이 길고 가슴에 돌덩이 들었는지 무겁구나. 한 달 후에 온 두 번째 편지와 세 번째를 받았을 때도 k는 읽으며 울었다. 그리고 이듬 해 봄 네 번째 편지는 받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 편지에서 k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알았다.

그때 k가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멀리 있는 다 큰 아들에게 어머니는 옛날이야기 아닌 자신의 간절한 심정을 말 아닌 글자로 하고 싶었다는 것을 k는 나중에야 알았다. 어릴 적 잠들지 못할 때 재미난 이야기로 아들을 잠들게 해주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k는 어머니를 위해 지금껏 한 번도 기뻐할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후회스럽고 가슴 아팠다. 무슨 말을 해드리면 웃으실까. k는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k는 무덤에 잔술을 고루 뿌렸다. 문득 엎뎌 글씨 연습을 하시던 어머니의 작은 등이 떠올랐다. ‘어머니! 편지 정말 고마웠어요.’ k는 가까스로 울음을 삼킨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아버지! 그때 아래쪽 무덤에서 아버지가 뭐라고 버럭 소리 질렀다.

3

어제 아침 뜻밖에 k 휴대전화에 면접통지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 세계은행 면접통보 희망초등학교 강당 22일

졸업 후, k는 마흔 번도 넘게 채용모집광고에 이력서를 냈다. 인터넷 접수를 하는 회사도 많았다. 그동안 k는 면접 네 번을 받았고, 결과 통지를 해오는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오빠 면접시험 힘내세요! ^^. 그럴 때 그녀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k는 반가웠다. 지난 주말 만났을 때, 강아지 보면 오빠 떠올라요 하던 그녀의 말이 문득 k는 생각났다. APT에 살던 친구가 가족 따라 서울로 이사하면서 키우던 시추 강아지를 주고 갔다. 그런데 성대 수술을 한 개였다. 우리를 닮아 오빠 생각났어요. 영리하여 내말 다 알아요.

그랬다. 두 사람 사이는 조금 불편해도 그런대로 서로 대화가 통했다. 그녀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 더듬거리고 스무고개 넘듯 했던 것이다. k의 말을 단박에 알아들을 만큼 그녀의 귀는 매우 밝았다. 대학졸업 후 k가 몇 번의 채용면접에서 실패했을 때부터 그녀가 대하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k는 느끼고 있었다. 매번 자신을 가져, 채용시험이 쉬운 줄 알았어? 그녀의 위로가 늘 고마웠다. 그런데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일까. 만나고 싶은데 볼 수 없을 때 휴대전화 문자대화는 더 의미가 깊었다. 하루면 몇 통씩 오고간 문자대화가 푹푹 찌는 여름이 되면서 슬그머니 시들해져 회수가 한 번으로 줄었다.

k는 소리로 말하고, 그녀는 멀리 있을 때도 당연히 문자로 말했다. 그게 두 사람 대화방식이었다. 가끔 k는 우리 사이에 말과 글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그녀의 말소리는 멀고 아득하여 닿지 않고, 그의 말은 떠도는 바람처럼 그녀에게 날아가 흔적 없이 흩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섹스의 격렬한 절정에서 그의 말이 그녀에게 닿아 흩어지듯 그녀의 소리 없는 말 또한 가뭇없이 그에게 닿는 순간 흩어져 사라졌다.

오전 11시 10분쯤 마침내 k 면접차례가 됐다. 면접 장소는 학교강당 내부 한편을 임시 칸막이로 가린 곳이었다. 그의 접수번호는 147번, 접수 대기자가 500명을 넘었다. 146번부터 150번까지 해당자 다섯 사람은 면접관 세 사람이 앉아 있는 책상 3미터 앞에 늘어섰다. 5초 동안, 면접관과 k 시선이 맞부딪쳤다. k는 좋은 인상을 보이기 위해 어제 이발관에서 머리 손질도 하였다. 양쪽 귀를 다 드러내지 않고 반쯤 가려지도록 신경을 썼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몇 차례 연습했을 때처럼 k는 침착하게 입술 양끝을 당겨 미소를 입가에 올렸다. 침착하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숨을 깊이 들이고 내쉬었다.

이때 면접관 세 사람이 동시에 뭐라고 말하였고, 148번이 k 옆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웅얼웅얼 멀리 들렸다. 맨 왼편 면접관의 두 눈이 안경 속에서 k를 쳐다보고 있었다. k는 면접관의 큼직한 귀를 쳐다보았다. 면접관의 큰 두 귀는 엇비스듬하게 k를 향해 웃는 듯 보였다.

-이름을 말해보시오, 147번!

“예, 147번 김무진입니다.”

k는 큰 소리로 힘차게 대답했다. 긴장하지 말고 당당할 필요가 있었다. 면접관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꽂혔다.

가운데 면접관의 눈이 아까보다 커지는 것을 k는 놓치지 않았다.

면접관은 양 옆에 동석한 면접관을 힐긋 돌아본 후 사인펜으로 종이에 몇 글자 쓰더니 앞으로 쑥 내밀었다. 하얀 A4에 큼직하게 쓴 검은 글자는 k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잘 못 듣습니까? > 글자는 소리가 되어 k에게 크게 들렸다. k는 재빨리 말했다. 아닙니다. 그러나 k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면접관은 지체 없이 종이 든 손으로 출입문을 가리켰다. 귀머거리 아냐? 면접관의 말하는 소리가 k에게 들리는 것 같았다.

한심하군! 누군가 맞장구치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상무님!

k는 세상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환청인가, 알 수 없는 소리가 자꾸 들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했고 괴롭혔다.

k는 면접장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최근에 겪은 세 번의 면접이 전하는 숨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k는 새삼 되돌아봤다. 소리로 들을 수 없는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학 진학문제로 아버지가 속을 끓일 때 어느 날 어머니가 들려주던 말이 언뜻 생각났다. 네가 귀를 그리 작게 갖고 태어난 것을 원망하냐? 그래서 말이다. 너를 낳은 사람이 나인데 원망하려면 이 어미를 원망해야지. 내 생각은 이렇다. 네 귀가 쥐 귀 같이 작은 이유는 남 말을 쉽게도 가벼이도 듣거나 여기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냐 하고 좋게 생각해버리면 되지 싶구나. 다시 말하자면, 듣기 좋게 속이는 소리, 바른 소리, 더러운 소리, 이 모든 세상 소리 다 듣지 말고 가려서 들으라는 바로 이 말이 하고 싶어, 알았지? 무진아! 알아들었냐?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그렇지 않을 텐데요. 어머니!

문득, 깊은 밤 잠 깨어 눈을 뜨면 어둠 속에서 k를 노려보는 아버지의 날카로운 시선을 번번이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귀 먹었냐? 고함소리도 들렸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을 하고, 생각한 것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생각한 대로 다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말을 한다 해도 할 말과 할 수 없는 말을 가릴 줄 아는 사람 역시 많지 않다.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뚜렷이 가려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느 때 상대의 말을 바윗돌처럼 전연 듣지 못하고, 설사 들어도 그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게 돌장승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직업, 직장을 갖는다는 생각은 사회구성원으로 소속감이었다. 소속감을 갈망하는 k의 희망은 이번에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희망이 안 보였다. 보이지 않는 희망은 들리지 않는 소리처럼 잡히지 않았다. 들을 수 없어 움켜잡을 수 없는 희망이었다. k는 희망을 붙잡기 위해서 잘 듣는 귀가 절실함을 깨달았다. 그녀를 만나 무슨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어쨌든 귀 먹었다는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처럼 잘 듣는 귀를 가질 수는 없을까. 그러니까 남들처럼 비 올 때 비 내리는 소리, 바람소리, 경쾌한 팝송을 희미하게 아닌 뚜렷하게 k는 듣고 싶었다. 순간 그녀의 조개껍질 같이 앙증맞은 작은 귀를 k는 떠올렸다. 아, 귀는 어떤 맛일까.

어둠이 아가릴 크게 벌린 짐승처럼 먼 하늘에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와 번잡한 거리를 삼키고 있었다. 그녀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면접 끝났어 만나자 어디 있어? 낯선 어둔 거리에서 몇 번인가 그녀에게 k는 휴대전화 문자를 날렸다.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휴대전화에 뜬금없는 대부업체 대출광고 문자가 들어왔다. 그의 메시지는 줄 끊긴 연처럼 허공 멀리 사라졌다. k는 그녀를 만나 꼭 하고 싶은 말과 내뱉지 못한 말을 입속에 아껴두었다.

거리는 질주하며 내쏘는 차량들의 전조등에 훤히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구름 가득한 밤하늘에 미처 숨다 만 별 몇 개 남아 깜박거렸다. 인생이, 삶이 그런 것이라고 구름 뒤에 숨지 못한 별 몇 개가 k를 위로하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k는 그녀와 떨어져 있는 거리가 가까운지 얼마나 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멀리 있고 보이지 않아도 k는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어딘가에서 불평하는 비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가슴 한 귀퉁이가 저려왔다.

4

k는 그녀를 만나지 못한 지 어느새 삼 주가 되었다. 숨 막히던 무더위도 점차 누그러져 아침저녁 선선해졌다. 그녀는 이따금 생각난 듯 잠들기 전 문자를 k에게 보내왔다. #바빠서 오빠 미안 담에 연락해. 또 다음 날도 여전 바쁘다 했다. 메시지 글말은 늘 바빴다. 두 사람 통화는 안 되었다. 어째서일까. 그녀의 문자는 멀어 숨소리는커녕 아무것도 k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진심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놓친 것이 무엇인지 k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줄 글말 행간에 숨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아니, 서로의 대화방식에 문제가 있는지도 몰랐다. k는 그녀와 관계맺음인 휴대전화의 문자 거리가 묘연해졌음을 알았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면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낯선 사람들만 분주히 오가는 거리에서, k는 두 사람 사이 측정이 불가능한 거리가 아득하여 헛웃음이 나왔다.

주말이던 그날 밤, k는 바지주머니 속에 칼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전날 마트 생활용품매장에서 칼집 없는 칼 한 자루를 구입했다. 번들거리는 칼날은 연필을 깎을 만큼 잘 들었다. k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나는 네 귀를 통해 들을 것이다. 누구보다 k는 그녀를 원하고 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날 k는 건너편 길모퉁이에서 그녀가 일하는 웨딩 홈을 아까부터 바라봤다. 넓은 윈도에 진열된 하얀 드레스가 현란한 조명에 눈부셨다. 신발을 집어삼킨 어둠은 한줄기 달빛도 가렸다. 그녀의 퇴근을 기다린 지 두 시간이 됐다.

두 젊은 연인들이 팔짱을 낀 채 k 앞을 지나갔다. 자기야! 거기 언제 갈 거야! 여자가 고개를 젖혀 속삭이고, 남자가 웃음 띠고 대답했다. 아무 때나 너 좋을 때, 됐지? 정말? 그래! 그들이 멀어지는 발소리와 대화가 k 상상 속에서 살아 날뛰었다.

#미안해 오늘 바빠 내일 만나자 ^^

한 시간 전 그녀가 보낸 휴대전화 문자를 k는 여기서 받았다.

4층 건물은 금방 어두워졌고, 건물계단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이 속속 내려와 번잡한 거리로 사라졌다. 불이 밝혀진 곳은 1층 웨딩 홈만 남았다. k가 막 담배를 입술에 끼우고 라이터 불을 붙일 때, 택시 한 대가 달려와 웨딩 홈 앞에 멎었다. 한 남자가 택시에서 내렸다. 남자는 서슴없이 웨딩 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k는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이겼다.

잠시 후 웨딩 홈 조명이 순식간에 꺼졌고, 이내 출입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함께 나왔다. 어두워 남자의 얼굴은 구분이 안 되고 그녀가 출입문을 잠갔다. 그리고 둘이는 차량 통행이 제한 된 번화한 상점가로 다정한 연인처럼 걸어갔다. 상점마다 화려한 진열품 앞에서 두 사람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밝게 비쳤다. 누가 봐도 썩 어울리는 그들의 모습은 밤 쇼핑을 나온 연인들로 보였다.

k는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봤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팔을 끼고 밤거리를 걸을 것이라고 예상 못했기 때문에 k는 기분이 묘했다. 지난여름 남해섬 피서는 저 남자와 동행이었을까. 치과의사라 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고, 가까이 간다 해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k는 목소리로 말하고, 그녀는 안 보인 곳에서는 당연히 글자로 말했다. 소리와 글자의 차이를 k는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들을 수 없는 소리와 들리는 소리는 가까운 듯싶은데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의 다정한 속삭임, 한탄 섞인 중얼거림이 들린다 해도 어떻게 잡아둘 수 있는가.

두 사람은 금은방 앞에서 진열된 귀중품을 오래 쳐다보았고, 무슨 말인지 주고받으며 느릿느릿 걸었다. 그리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예쁜 마네킹을 보며 밝게 웃었다. ‘한 번 더 다녀올까? 가을 변산 어때?’ ‘정말요? 그래요’

그때, 누군가의 말소리가 소음 속에 느닷없이 k 귀에 들려왔다. 처음 듣는 남자와 귀에 익은 것 같이 느껴지는 나긋한 여자의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오십 미터 저쪽 행인들 속에 섞여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가 뜬금없이 k 귀에 파고들은 것이다. 소란스런 거리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k는 분명하게 들었다.

‘펜션에서 하루 보내고’하고 남자가 말했다. 시간은 9시가 넘었고 경양식 레스토랑 ‘티파니에서 저녁’ 앞이었다.

그녀와 k는 저녁 식사 후 영화관이 다음 코스였지만, 지금처럼 늦은 식사 뒤엔 두말없이 모텔로 향했었다. 말하자면, ‘악어’에서 고기와 누룽지로 주린 배를 채운 뒤, 철로 위를 달린 열차가 당연히 역에서 멈추듯 모텔 ‘파라다이스’로 향하곤 했었다. 따로 할 일도 없어 ‘악어’에서 ‘파라다이스’로 그리고 섹스. 그게 그녀와 k의 만남 방식이었다. 두 사람 식사 후 행태가 k 눈앞에 죽 펼쳐보였다.

레스토랑으로 두 사람이 사라지자 대화가 k 귀에 더는 들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언젠가부터 k는 그녀가 머뭇머뭇 뒷걸음질 하는 모습을 부러 모른척했고, 뚜렷하지는 않지만 느낌으로 어렴풋이 소리를 들었음을 k는 기억해 냈다. 때때로 그가 뭐라고? 다시 말해줄래? 할 때마다 중얼거리던 그녀의 입 모양이 문득 되살아났다. 아, 진짜 짜증나, 돌 귀야! 그럴 때 그녀의 살짝 찌푸리던 표정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때 일이 k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의 탐스러운 귀를 생각하면 k는 늘 혀끝에 침이 고였다. 그녀의 밝은 귀는 언제나 k 말을 잘 들었다. k는 두 사람이 들어간 레스토랑을 노려봤다. 그녀의 앙증맞은 작은 귀는 불판 위에서 삼겹살 맛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었다. 아니 삼겹살과 섞였을 때 구분이 될지 궁금했다.

k는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치미는 것을 느꼈다. 유독 달 없는 밤이면 함께 나이 먹으며 커 온 가슴속 짐승 한 마리, 어느덧 웃자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짐승의 거친 숨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k는 오래 잊고 있던 어머니의 말소리를 함께 들었다. 무진아! 네 귀가 그리 작은 것은 세상의 소리를 다 듣지 말고, 좋은 소리 나쁜 소리 가려들으란 뜻 아니겠냐? k는 줄곧 옆에서 떠나지 않는 아버지를 쳐다봤다. 녀석아! 귀가 작아도 생각은 제대로 못하겠냐? 아버지의 짜증난 얼굴이 k 가깝게 다가왔다.

낯선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k는 그곳을 서둘러 벗어났다. k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허둥지둥 상가를 벗어나 넓은 도로에 나왔을 때, k는 새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차량 통행을 막고 도로를 점거한 수많은 사람들이 우렁우렁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종이컵 촛불을 손에 들고 도로에 편하게 앉아 있었다. 도로를 가로 지른 연단 펼침막에 ‘4대강 반대 촛불집회’ 라고 쓰였고, 그보다 작은 펼침막에 자연사랑 환경단체, 4대강 살리기 모임, 기타 시민단체도 여럿 적혔다. 모인 사람이 대충 헤아려도 수천은 넘어보였다.

촛불을 든 많은 사람들의 외침이 통곡처럼 어둠 속을 날아와 k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4대강 반대!

5

서빙아가씨는 은색가위로 삼겹살을 먹기 쉽게 토막 냈다. 뜨겁게 달궈진 불판에서 고기토막들이 비틀리며 구워졌다. 고기는 노릿한 냄새를 풍기고 매캐한 연기를 피우며 익어갔다. 고기가 익을 때 소리 아닌 냄새로 알 수 있다. 고기에 배어 있던 기름이 타는지 얇은 연기가 계속 피어났다. 고기가 다 익었으므로 가스를 껐다. 익어 뒤틀린 삼겹살, 아직 몇 토막이 남았다. 한입에 넣기에 좀 크다 싶은 고기를 은색가위로 다시 잘랐다. 피 냄새와 피 맛이 사라진 고기토막은 씹을수록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선홍빛이던 삼겹살이 뜨거운 불판에 익으면서 검붉게 뒤틀렸을 때, k는 홀린 듯 그녀의 작은 귀를 생각했다. 이미 먹어버린 고기토막들과 남은 고기들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아니 구분이 불가능 했다.

고기를 자르기에는 역시 칼보다 가위가 낫다. k는 이 식당에 처음은 대학 종강하던 날 왔고, 그 후에도 그녀와 주말저녁에 자주 왔으나 최근에는 오지 못했다. 하지만 주말저녁 그녀 없이 혼자 이곳 식당 ‘악어’에서 소주에 삼겹살을 먹는 맛은 특별했다. 이 기분을 그녀는 알까? 당연히 모를 것이다.

그날 밤 혼잡스런 거리에서 k가 들은 두 사람의 대화는 환청이었을까. 환청일수도 있고 어쩌면 실제 들렸을지도 몰랐다. 아무러면 어떤가. 그녀의 한쪽 귀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싹둑 잘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악어에 들려 삼겹살과 같이 불판에 구워먹고 귀가 밝아지면 되는 것이다. k는 상상 속에서 만족했다.

그날 이후 그녀의 휴대전화는 전원이 꺼진 채 긴 침묵으로 말이 없다. k는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에 어느 골목모퉁이에서 슬그머니 버린 칼을 생각했다. 자르고 베어낼 것은 그녀의 귀가 아닌 자신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웅크린 분노와 배신감임을 k 는 그때 문득 깨달았다.

다음 날 아침, k는 동네 이발관에 들렸다. 그동안 귀를 덮은 긴 머리카락을 두 귀가 다 보이게 잘랐다. k는 이발사의 가위질에 싹둑싹둑 잘려 어깨를 감싼 하얀 보위로 힘없이 쏟아져 내리는 긴 머리카락을 거울 속으로 지켜보았다. 오랜만에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는 두 귀. 아버지가 그토록 미워하던 쥐 귀. 가위질에 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기 시작하면서 숨었던 귀가 드러나는 순간 차락차락 가위소리가 k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귀가 작긴 하지만 참 귀엽게 생겼어요.’ 이발사의 말소리가 깜짝 들려왔다. 아, 지금 악몽을 꾸는가. 작아도 귀엽게 생긴 귀. k 눈에 이발사 뒤에 서 있는 아버지의 파르스름한 얼굴이 느닷없이 거울 속에 보였다. 미안하다, 내가 좀 심했지? 환청처럼 아버지 말소리가 들렸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k는 거울 속 이발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 예! 귀가 작아도 아주 귀엽게 생겼습니다.”

거울 속에서 이발사는 가위질을 멈추지 않은 채 빙긋 웃고 있었다.

순간 가슴속이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k는 거울 속에 나이 지긋한 이발사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버지는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k는 줄곧 그녀의 한쪽 귀를 칼 혹은 가위로 잘라와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는 상상을 하면서 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뒷자리 두 남자는 술이 취해 횡설수설 계속 떠들고 있었다.

k는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내일은 산소에 가 두 분께 술을 올려드리자, 하고 생각하자 기분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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