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교육에 관한 몇 가지 생각
  • 이용숙
  • 승인 2013.12.26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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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3년 6개월의 긴긴 교단생활을 마감하고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초?중?고?대학 16년의 학창까지 합산하면 무려 60년 가까이 교문만을 드나든 셈이다. 그러니 학교 밖 세상은 필자에게 한량없이 낯선 곳일 수밖에 없다.

후배 교수들이 정년 기념으로 엮어 준 『시선집』의 ‘책머리’에서 참 많은 어리석음을 지은 듯하여 부끄럽고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고맙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드리며, 세상은 언제나 은혜의 덩어리임을 깨닫는다.

교육, 가르치고 기르는 일에서 최우선으로 소중한 목표는 무엇일까? 지식이나 기능 또는 창의성이나 성실성, 어느 하나 값지지 않은 게 없다. 그럼에도 절대가치는 단연코 ‘생명 존중’이라 확신한다. 생명의 가치를 알고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표인 것이다.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당연히 남과 자연환경의 삶도 존중해야 하는 법, 여기에서 배려와 나눔과 베풂이 비롯된다.

 
 기다림의 소중한 미학

공자께서 ‘인(仁)’을 펼치고자 제자들과 천하를 찾아나선다. 이를 철환천하라고 부른다. 그러던 중 ‘진채의 난’을 만나 전란을 피해서 망명도생, 3일 주야를 끼니는커녕 물 한 모금 못 마시고나서 가까스로 전란지역을 벗어난다. 다행히 한 장자(지역의 덕망가)로부터 쌀을 얻었으나, 모두 기진하여 밥 지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때 가장 봉사와 희생정신이 뛰어난 제자 자공이 나서서 스승과 동료들을 위해 취사를 시작한다.

한편 성품이 강직하고 직선적인 제자 자로는, 취사는 돕지 않고 속히 밥상을 내라며 재촉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취사가 끝난 밥솥에서 자공이 혼자서 밥알을 입안에 넣는 광경을 보고서, 괘씸한 생각에 울화가 터져 곧바로 스승 공자께 일러바친다. 공자는 평소 자로의 거짓 없음을 알지만, 자공의 고운 마음씨도 익히 알고 있다. 그저 잠자코 있으라고 타이르고 밥상을 들고 온 자공을 보며, 조상님께 먼저 제사를 올리자고 한다. 이 때 자공이 나아가 이 밥은 ‘숫밥’―밥솥에서 처음 퍼담은 밥―이 아니므로 제사를 올릴 수 없음을 알린다. 연유는 급히 서두르느라 지푸라기가 있어 제거하다가 밥알 몇 개를 먼저 먹었고, 뉘도 까서 밥티를 먹었노라 고한다.

전후 상황을 알게 된 공자는 자로를 지그시 바라본다. 자로는 정직하고 고마운 친구를 잠시나마 오해하고 의심한 자신이 부끄러워, 스승과 친구에게 사죄한다. 이 때 공자는 성품이 강직하고 불같이 직선적인 자로에게 ‘용서할 서[恕]’의 일자훈(한 글자의 가르침)을 내린다.

교단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맞부딪힌다. 그 때 즉각 다그치고 대면시켜 해결하려 했다면, 스승과 제자 또 벗과 벗의 관계는 어찌 되었을까? 믿음을 바탕으로 한 기다림이란 그런 것이다. 목전의 상황에 앞뒤 가리지 않고 대처하는 게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슬기로운 가르침이 아닌가. 적시관중(適時貫中), 매사에 때가 제일 긴요하니 때를 놓치면 그 효험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용』의 ‘시중(時中)’이란 바로 이것이다.

 
 시련을 딛고 향기를

눈 녹은 들밭에 나가 싱싱한 냉이를 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풋내가 나고 아무런 향기도 없었는데, 영하의 혹한을 견디고 서너 차례 눈에 갇혀 지내더니 싱그러운 향내음이 상큼하다.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매서운 추위와 적설이 향을 피우다니!

춘란과 관음소심 몇 분을 기르고 있다. 물 주기, 햇볕 조절, 영양 공급, 분 갈이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우기란 웬만한 아마추어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때 소위 ‘꽃몸살’이 필수조건이다. 정기적인 수분과 영양 공급으로 성장발육이 양호하면 꽃과 향기는 기대할 수 없다. 제때 물을 주지 않고 햇볕을 쬐어 주지 않으면 난이 몸살하다가 꽃대를 올린다. 종족보존의 본능이 표출되어, 후손을 생산하기 위한 원리다.

소나무에도 솔방울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생육상태가 불량한 것을 알아야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진리를 계시해 주고 있다. 시의 율격도 자연의 생명원리―계절의 순환?조수의 간만?달의 변화 등―에 기초할 때, 가장 ‘자연스런’ 율격이 창조된다.

시련과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르침, 참고 견디면서 더 밝은 내일을 꿈꾸며 노력하는 교육, 그런 어둠을 통하여 진정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법이다. 단군 설화의 ‘동굴’, 그 안에서의 쑥과 마늘은 인간으로의 환생을 약속하는 성장통이다. 춘향전의 옥살이와 심청전의 인당수도 바로 동굴의 원형이다. 시련을 거쳐야 눈부신 꽃과 향기를 기약할 수 있다.

 이용숙<전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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