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없는 지역정책 또 유감
‘균형’ 없는 지역정책 또 유감
  • 전정희
  • 승인 2013.12.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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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에 국가가 경제를 운용하는데 지켜야 할 두 가지 의무조항이 있다. 하나는 중소기업 보호육성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균형발전’이다. 특히 제123조 2항에는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살맛나는 국토를 만드는 것, 그것은 국가가 감당해야 할 신성한 의무라는 뜻이다. 그만큼 국가균형발전은 선택이 아닌, 당위의 문제다. “난 균형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정부 초기에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MB정부 5년간 ‘균형’의 가치는 철저히 금기시됐다. 그는 수도권 규제완화와 행정중심 복합도시 무력화 시도 등을 통해 지방의 피폐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각종 지역균형발전 사업과 지역혁신체계 구축 업무를 직접 챙겼던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지역발전위원회로 바뀌면서 허울뿐인 단순 자문기구로 전락했다. 헌법적 책무를 망각한 채 노무현 정부가 놓은 디딤돌마저 치워버린 것이다.

 지역 간 연계?협력으로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들고 나온 ‘5(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동남권, 대경권)+2(강원권, 제주권) 광역경제권’ 정책은 행정구역 중심의 인위적인 광역화로 인해 지역의 자생력을 가로막았다. 생활권 단위를 도외시한 채 경쟁력 관점으로만 접근하거나 나눠먹기식으로 추진한 탓에 지역특화사업에 대한 지역주민의 체감도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북의 경우 광주?전남과 역사?문화적 동질성이나 경제적 연관성 등을 놓고 볼 때 전혀 다른 생활권임에도 불구하고 호남권역으로 한데 묶어버렸다.

이로 인해 연계·협력은커녕, 그렇지 않아도 소외감을 느끼는 지역 정서는 더욱 악화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지역정책이 실패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했던가. 그러자 박근혜 정부는 얼마 전 ‘지역희망(HOPE)프로젝트’라는 것을 내놓았다. 지방자치단체 간 자율적 합의를 통해 이른바 ‘지역행복생활권’을 설정해 공동으로 발전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지원하는 계획이다. 기존의 광역권, 초광역권은 시·도 중심의 경제협력권으로 전환해 주민체감형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5+2 광역경제권’ 정책의 폐지를 뜻한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광역경제권 선도 산업에 지원되던 정부 예산마저 끊기게 됐다.

 그러나 매번 새 부대만 찾으면 깊은맛이 안나는 법이다. 이전 정부들이 추진한 지역정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기대보다는 연속성 단절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지역이 정책 시험장이 된 것 같아 씁쓸함을 떨칠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혁신도시는 지방 이전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소극적인 자세로 진척이 더디고, 기업도시 역시 경기침체 장기화로 허허벌판인 곳이 상당수다.

가뜩이나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한 상황에서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오락가락 중심을 잃으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은 지역은 갈수록 피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시스템 자체가 경쟁을 부추기는 형태여서, 필요한 지역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 예컨대 지역행복생활권을 설정할 경우 권역 간 입지 다툼이 발생할 것이고, 특정 생활권이 확정된 이후에도 그 안에서 기초지자체 간 다툼이 또다시 나타날 수 있다. 재원 확보 계획도 불투명한데다, ‘삶의 질’을 강조한 나머지 지역산업 육성에 대한 큰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그나마, 정부예산 편성 시 지역 위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는 등 역할과 위상을 한층 강화한 것은 긍정적이나,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개정안에는 여전히 ‘균형’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찾기 어렵다. 수도권의 과밀자원을 활용해 비수도권의 자원 과소현상을 해소하는 균형발전정책을 현 정부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역위는 이명박 정부에서 무너진 축대를 다시 세워야 지방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을 선도하느냐, 아니면 일극화의 들러리로 전락하느냐 여부는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식물위원회’라는 오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란다.

 전정희<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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