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의 화두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소통(疏通)의 화두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 나종우
  • 승인 2013.12.17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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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이 다해 가고 있다. 어느 때나 한해가 다해 갈 때를 회상 할 때는 다사다난했었다고들 말한다. 올 해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 올해도 참으로 많은 사건과 일들이 파도처럼 우리 곁에 밀려오고 또 밀려왔었던 한 해 였다. 그런 시간 속에서 화두처럼 한 해의 시작부터 한 해의 끝까지 마치 풀지 못할 수수께끼 같은 단어 하나가 있어왔다. ‘소통(疏通)’이란 단어다. 소통이란 사전적 의미는 ‘서로 잘 통한다’는 뜻이 있는데, 이 소통 가운데 의사소통(意思疏通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함)이 되질 않아서 문제였다. 한 집안에서 부모의 의사소통이 되질 못하면 자식들이 불안하고 한 나라에서 여야정치인들의 의사소통이 되질 못하면 국민들이 불안하게 된다.

소통이 되질 않는 이유는 ‘다름’과 ‘틀림’ 이라는 해석의 차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어떤 의견이 다르다고 생각 할 때는 서로 조율하고 협상 할 여지가 있으나, 틀리다고 생각 한다면 그것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협상이 되질 않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권에서 여야간에 사사건건 부딪치는 것을 보면은 다름은 없고 틀림만을 주장하면서, 내생각과 같으면 소통이고 다르면 불통이라고 서로 상대방에게 삿대질 하는 형국만 보인다. 『논어(論語)』에 보면 무적무막(無敵無莫)이라는 말이 나온다. 절대 옳음도 절대 그름도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군자는 천하의 사물에 대한 판단기준을 오로지 이것이 옳다 함도 없고 오로지 이것이 옳지 않다 함도 없으니 다만 의(義)에 표준을 두고서 판단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특히 정치현장을 보면 흑백논리가 판을 치고, 내 생각이 아닌 것은 모두 타도 대상이며, 내 생각이 최선인양 아집과 독선이 횡행하는 각박한 세태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선 중종반정 당시 반정세력들은 중종의 정실비인 신씨를 반정을 반대했던 신수근의 딸이라하여 폐비시켰다. 잘못된 일이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반정세력들이 물러가고 조정이 잠잠해지자 신진 사림들은 폐비 신씨를 복위시키고 폐비시킨 주모자를 처벌해야 된다고 상소를 올리게 된다. 이에 대하여 조정은 평지풍파를 일으킨 일이라 하여 죄(罪)를 주자하고, 한쪽에서는 언로(言路)를 막는 것은 국가의 기맥(氣脈)을 끊는 것이라 하여 죄주는 것은 불가하다고 갑론을박을 하였다. 이것을 두고 양편 다 옳다하는 양시론(兩是論)과 둘 다 잘못되었다는 양비론(兩非論)이 있었다. 지극히 편의적인 정치 논리가 떠돌았던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은 당시 힘의 논리 때문에 신진 사림이 귀양가고 죽어갔지만 끝내 대의(大義)를 귀히 여기는 사림정치의 초석이 마련되었다 할 것이다. 공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흑백논리에 치우치지 말고 항상 의(義)에 기준점을 두고 판단하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의와 더불어 국익(國益)과 관련하여 생각하고 판단해야 될 것이다.

오늘날 정치권의 소통의 기준점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국익에 해당되느냐 아니냐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익(私益)이나 당익(黨益)에 눈이 어두워지면 소통은 되질 않고 소통이 되질 않으면 국민들은 피로해지고 정치권에 등을 돌리게 된다. 정치권의 모든 논쟁은 국익이라는 하나의 길을 놓고 해야 된다. 서로 옳다는 기준은 국익이라는 명확한 기준에서 본다면 길은 하나로 통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를 뒤돌아보면, 한나라가 망하고 흥하느냐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결정되기 보다는 내적으로 분열되고 통합되지 못했을 때 망하고, 국익 앞에 하나가 되었을 때 흥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고구려의 패망원인과 임진왜란의 교훈, 그리고 세종과 정조시기의 국가 경영 속에서 이러한 예를 살필 수 있다.

하나가 될 때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同人之心). 두 사람이 하나가되어 뜻이 같아질 때 그 날카로움은 쇠도 끊을 수 있으며, 마음을 함께 한 말은 그 향취가 난초와 같다고 『주역』에서는 말하고 있다. 두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새로운 역사가 쓰여 진다고 하였다. 정당의 지도자들이 좋은 생각(국익)으로 하나가될 때 국가의 융성을 가져오고, 동서가 하나가 될 때 해묵은 지역 갈등은 해소될 수 있으며, 남북이 하나가되어 통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통은 현재 진행형 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정치인들이 소통하여 하나가된다고 하여 행여 국익보다는 기득권을 가진 정치권에만 좋은 야합(野合)이 되어서는 소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권에 득이 되는 것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소통이 필요한 때다. 아직까지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정쟁들이 올해 안으로 묵은 때 벗기듯 청산되고,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새해를 소망해 본다.

나종우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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