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전북정신
임진왜란과 전북정신
  • 이동희
  • 승인 2013.12.0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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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29일 운주면에서 이치전투에 관한 포럼이 열렸다. 완주문화원과 운주면이 면민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문화강좌 성격을 띤 포럼이었다. 작지만 지역민들이 지역을 알아가는 의미 깊은 프로그램으로 향후 이같은 강좌 내지 포럼이 확산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는 조선 8도 중 유일하게 보존되었다. 이치전투는 웅치전투와 함께 임진왜란 때 전라도를 지켜낸 싸움이다. 이치전투는 일본 측에서 임난 3대전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고, 웅치전은 왜군이 ‘조선국의 충의로운 죽음에 조의를 표한다’는 비목을 세워줄 정도로 조선군에 감복한 싸움이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제일의 곡창지대 전라도의 보존은 일본군을 내치는 기반이 되었다. 전라도마저 왜군에게 빼앗겼다면 선조는 압록강을 넘었을 것이고 조선은 운명을 다했을 수도 있다. 전라도는 망해가는 나라를 구해낸 조선의 보장지처였다. 전라도가 없다면 나라가 없다는 이순신의 말은 구호가 아니라 실제다.

 그런데 그 후손인 우리부터도 임난 때 전라도수호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임난 때 전라도가 보존된 것은 알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전라도는 죽어가는 조선을 살려낸 곳이며, 이는 목숨을 바친 지역민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얼마 전 남원 만인의총이 신문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만인의총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일본이 전군사를 몰아 전라도를 칠 때 이에 맞서 순절한 군관민 만 여명의 영령을 봉안한 곳이다. 이 만인의총을 국가 관리 기관으로 승격시켜달라는 지역의 요구가 또다시 거부되었다. 칠백인이 순절한 금산칠백의총은 국가 관리이고 군관민 만 여명이 순절한 만인의총은 도관리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지만 결과는 그렇게 나왔다.

 전북지역의 임진왜란사와 관련해 짚어볼 일은 이런 역사를 기념하고 선양하는 임진왜란 전시관이나 박물관이 이 지역에 없다는 것이다. 국난극복의 역사와 지역정신 정립차원에서 임진왜란 때 전라도 보존의 역사와 의미를 담은 전시관 또는 박물관을 크든 작든, 이치와 웅치 어디든 건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지역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이치전은 충남 금산과 전북 완주에 걸쳐 있다. 금산은 본래 전라도로 1963년에 충청도로 편입되었다. 임난 때 이치전은 전라도의 역사이다. 그럼에도 이치전을 선양하는 충남의 노력은 남다르다.

 이치전적지는 전북에서 이미 1976년에 도기념물 26호로 지정하였는데, 충남은 2000년에 금산쪽 이치전적지를 도기념물 154호로 지정하였다. 권율장군이치대첩비는 1866년에 건립되었다가 1944년 폭파되었는데, 1963년에 다시 세우고 1984년에 충남문화재자료 25호로 지정하였다. 또 금산에서는 이치대첩기념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반면에 전북은 웅치전 영령을 기리는 창렬사를 작년 2012년에야 웅치전적지인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에 건립하였다. 늦게라도 건립한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사당과 터가 작고 옹색하다. 이 사당이 그나마 있는 임난초 호남보존의 주역들을 모신 사당이다.

 이치전에 권율, 황진장군과 함께 참여해 순절한 의병장 황박이 있다. 황박은 우주황씨로 웅치전에서 공을 세우고 이치에서 순절하였다. 조선은 그 충심을 기리는 정려를 내리고 병사에 증직하였다. 그 정려가 1963년 중창되어 김제 용지면 구암리에 있다. 그런데 이 정려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이치전에서 생존한 권율은 그 비가 충청도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순절한 의병장 황박의 정려는 전북에서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하고 있다. 전북에서도 적극적으로 문화재지정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역정신의 문제이다. 중창해서 오래되지 않은 것이지만 그 비와 정려의 연원이 깊고, 거기에 담긴 정신이 반드시 이어가야 할 것이라는 점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 선상에서 순창의 한응성 정려도 그렇다. 한응성은 조헌의 문인으로 금산에서 순절하여 칠백의총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럼에도 한응성 정려는 도문화재로 지정되어있지 않다. 전북지역에 임난 의병과 관련한 정려로 문화재 지정을 받은 것은 남원 양대박부자의 정려뿐이다. 임난 때 전라도를 수호하여 조선을 지켜낸 역사와 견주어 미흡한 편이다. 임난 순절자들의 유적 유물에 대한 문화재 지정은 그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는 한 방편이 될 것이다.

 전북은 여러모로 어렵다. 하지만 어려울 때라도 지역정신은 잘 챙기고 놓지 말아야 한다. 정신마저 놓치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임진왜란은 동학농민혁명과 함께 전북의 정신적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신들을 선양하고 계승하여 선조들에게서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얻는 전북이 되었으면 한다.

 이동희 / 전주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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