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알아야 면장한다
시(詩)를 알아야 면장한다
  • 이동희
  • 승인 2013.12.05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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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이 저무는 12월이다. 섣달이야 음력을 말하지만, 12월을 한 해의 마지막 달인 섣달로 여기며 살고 있다. 언어란 언중의 쓰임대로 가는 것이지, 국어사전의 길로만 가지는 않는다. 언필칭 시인이란 명함으로 귀한 지면의 한 귀퉁이를 들고 왔다. 그런 인연으로 올해의 마지막 글을 시 이야기로 마감할까 한다.

 흔히 쓰는 말로 ‘알아야 면장한다’는 말이 있다. 면장(面長)은 예나 지금이나 시골의 중추적인 인물이요 유지임엔 틀림없다. 그런 막중한 자리이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유식해야 면장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사회의 덕망 있는 분이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었기에 복잡한 행정능력이 좀 미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뭘)알아야 면장(面長)을 하지!”라고 자탄했을 법하다. 그 말의 뿌리가 명확하지 않은 속언(俗諺)의 특성으로 미루어 그럴 만도 하다 여겨진다.

 그러나 이 속언의 뜻을 좀 다른 각도에서 출전을 말하는 이도 있다. 《논어》〈양화 편〉의 한 구절이다. “子謂伯魚曰: 女爲(詩經)周南·召南乎. 人而不爲(詩經)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 “공자께서 그의 아들 백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시경의)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였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시)을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장을 마주 보고 서 있는 것과 같아서 더 나아가지 못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의 핵심은 ‘시를 모르는 사람과 함께 (대화)하면 마치 담장을 마주보고 서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시를 공부하라는 것이다. ‘벽을 마주하는=정장면(正牆面)’ 벽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즉 ‘면장(免墻)’을 하려면 시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시를)알아야 면장(免牆)을 한다”가 “뭘 알아야 면장(面長)한다”는 동음이의어로 전의되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풀이요, 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매우 타당성이 높다.

 공자께서 이 말씀을 하기 바로 직전에 시의 효용성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 어느 시인은 오늘날 시 한 편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마치 ‘일회용 반창고의 효용성’에 그친다고 지적하지만, 공자께서 보인《시경》시에 대한 풀이는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더구나 오늘날 시가 소홀히 취급받고 하찮게 여겨지는 풍토에서는 더욱 막중한 뜻이 있다.

 “子曰: 小子 何莫學夫詩. (詩는)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선생께서 가로되 ‘그대들은 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는)사람에게 감흥을 돋우게 하고, 사람에게 사물을 바로 보게 하며, 대중과 더불어 어울리고 화락하게 하며, 또한 은근히 정치를 비판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가깝게는 어버이를 바르게 섬기고, 멀리는 임금 섬기는 도리를 시에서 배울 수 있으며, (또한)시로써 새나 짐승, 나무나 풀의 이름도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매우 척박하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 실상이 말할 수 없이 비인간적이고 살벌한 지경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피의 대가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절명의 위기라는 외침이 몰염치한 여론에 묻힌다든지, 1%가 99%를 노예로 만드는 자본의 행태가 새로운 독재라는 경고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가정의 해체와 파괴는 오래된 이야기다. 형제간의 갈등과 존속에 대한 무참한 학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에 태연자약하고 정쟁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진다. 부끄럽되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잘사는 ‘밑그림’이 없이 잘 살겠다고 치달려간다. 제동장치가 고장 난 노후차량이 지도에도 없는 행선지를 향해 돌진하는 형국이다.

 이때 공자의 ‘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는 질책이 귀에 따갑다. 모두가 면장(免牆)할 생각은 하지 않고, 벽이 되어도 잘만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마침 고은 시인이 단 6개월 만에 썼다는 539편의 시가《무제 시편》이란 제목을 달고 나왔다. 그 중 한 편을 독자들께 세밑 선물로 올린다. 가납해 주시고 시를 공부하며 한 해를 잘 마감하시기를 빈다.

 “산이 위로했다/ 바다가 격려했다/ 그믐달이 뭔가를 깨닫게 했다// 은혜 속에서 그 무상(無償)의 시혜 속에서/ 나는 공짜에만 익숙해졌다/ 대기 속에서 너 자신의 죽음으로 뉘우쳐라/ 백골로 부끄러워하라”(고은「무제 시편 82」전문)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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