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첫눈
  • 진동규
  • 승인 2013.12.0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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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은 꽃잎 떠난 자리로 내리는 눈이다. 꽃 진 자리마다 꽃 피어나던 시늉을 하면서 설레는 몸짓은 얼마나 황홀한가. 언제 무슨 약속이 있었을 리 없으련만 기다림의 원천은 어디서부터란 말인가. ‘첫눈이 내리면 우리 만나요.’ 첫눈처럼 그렇게 환한 아름다움을 가꾸어보자는 소망 같은 것을 나누지 않던가. 순백의 꽃, 세상의 어떤 모양도 냄새조차도 색깔도 없던 수증기로 떠돌다가 순간으로 완성해 보이는 물꽃, 신령한 물의 경전이다. 순백의 경이다. 세상의 한 경이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다. 어떤 기도보다도 더한 간절함으로 내리는 것이다. 생명운동 아닌 무엇이 있던가. 가지 하나 꺾이던 자리도 풀잎 하나 눕던 자리도 따뜻함으로 다가가는 경이다. 극락도 지옥도 없는 경이다. 무궁화꽃 피어나는 모습으로, 쑥부쟁이꽃 벙그는 그 자태로 눈은 내리고 있다.

 무궁화는 기도하는 꽃이다. 삼칠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토굴문을 지키며 새로운 기도문을 썼다. 햇볕을 차단하고 들어간 토굴이었던 것이다. 빛을 차단하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던가.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사람이나 먹는 독한 마늘, 쑥으로 견디는 천하의 호랑이요 곰이었다. 무궁화는 그 토굴문을 지켰던 것이다. 그날그날 하루분의 햇볕을 옴시래기 받아내는 것이었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꽃잎을 거두는 의식은 얼마나 엄숙한가. 꽃잎을 펴내던 의식보다 더 조신함이 있다. 꽃잎 한 장도 구겨지지 않게 다시 말아서 붓동을 세우는 것이다. 마지막 기도문을 끝내면서 그대로 뚝 떨어져 버리는 꽃이다. 그렇게 수십 수백의 꽃송이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피워내고 거두는 꽃이다. 보름도 채 못 채운 호랑이도 있었지만 끝내 사람으로 태어나는 곰을 맞이하는 꽃이 아니었던가.

 무서리에 꽃잎을 피워내는 쑥부쟁이꽃 하늘빛 그대로 담아 그윽하다. 꽃봉오리 우리 아가 주먹 같다. 꼭 쥔 주먹 힘겹게 손가락 하나 펴고, 그리고 또 손가락 둘 하면서 손가락 하나 더 펴보이는 자태다. 꼭 쥐고 나온 손 펴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제가 쥐이고 있던 세상이 있었을 터이다. 쉬 놓아버릴 세상이 아니지 않던가. 쑥부쟁이 꽃봉오리를 감싸 쥐고 있는 꽃잎이다. 제 속 깊은 무엇이 아직 부끄러움 같은 것을 어쩌지 못하는 것이리라. 우리 아가 손가락 하나 힘겹게 펴면서 두 손 내저으며 살아갈 새 세상을 열 듯 꽃잎 한 장 또 한 장 그것은 장엄한 희열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늑대 우는 산에도 눈은 내렸으리라. 내 고향집은 늑대가 내리는 깊은 산골이었다. 골짜기에는 소나무를 베어다가 숯을 굽는 숯굴이 있었는데 그 숯굴은 늑대가 내려왔다고 했다. 그 숯굴 너머에 무너진 돌무덤이 하나 있다. 늑대가 거기 산다고 했다. 돌무덤이 누구의 무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돌무덤 때문에 늑대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 돌무덤의 주인이 늑대가 되어서 제 집을 지키고 제 소나무 산을 지킨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문풍지가 울어대는 밤이면 늑대가 되어버린 돌무덤의 주인이 푹푹 쌓인 눈을 헤치고 오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첫눈이 오면 우리 거기서 만나요.”

  우리는 부단히 설레게 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무슨 약속이 있어서도 아니다. 대답은 눈송이가 뇌이고 있다. 꽃잎 떠난 자리 아련하게 꽃잎으로 내리는 눈송이다. 꽃잎 자리 아니었던 어디가 있던가. 우리 아가 펴보이는 손바닥 자박자박 꽃길은 얼마나 황홀한가.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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