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흥재
  • 승인 2013.12.01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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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미술품 경매가 이루어질 때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작가는 단연 박수근·이중섭이다. 박수근은 살아생전에 가혹하리만큼 숱한 고생과 시련을 겪은 무명이었으나, 사후에는 한국의 근현대미술 작가 중 가장 먼저 손꼽힌다. 어린 시절 밀레의 <만종>을 보고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그는 미술대학은커녕 18세 때 강원도 양구 보통학교를 졸업한 게 학력의 전부였다.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지만 가장 한국적인 인간상을 나름대로 독특한 기법으로 이룩해 낸 작가이다.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박완서의 소설 <나목> 속 등장인물 중, 내성적이며 묵묵히 스카프나 캔버스에 미군들의 초상을 그려주는 화가가 있는데, 이는 박수근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박수근은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6·25 전쟁 후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종이나 하드보드지, 목탄 등 약간의 재료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렵게 구한 캔버스 천은 크기가 매우 작아서 장대한 구도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이즈가 작은 작품들이 대부분인 까닭이기도 하다.

그가 그린 <나목>은 이런 상황 속에서 작가가 남긴 걸작에 속하는 작품이다. 보통 사람들에겐 춥고 헐벗어야만 보이던 겨울나무가 그의 눈엔 어찌 그리 늠름하고도 살아 숨 쉬는지, 정겹게 느껴질 정도이다.

박수근은 25세에 이웃집 처녀에게 구혼의 편지를 썼다. “가난한 화가인 나로서는 여유 있는 생활을 못할지라도 정신적인 사랑과 이해로써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같은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과 소박함은 나의 절대적인 반려자로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은 걸작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는 그렇게 미모와 교양과 품위를 갖춘 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1963년 49세 때 그는 백내장 악화로 인해 왼쪽 눈의 시력을 잃기까지 했으며, 가난과 역경 속에서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지극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박수근의 이런 생각은 단색조의 마애불 같은 질감 위에 간결한 선묘로 이루어진 자기만의 개성 있는 조형 세계를 완성했다. 6·25 전쟁 직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으로 나가거나 일을 해야 했던 여인들을 그리면서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지닌 우리의 어머니들을 작품에 투영시켰다.

직각을 이루지만 뚜렷한 윤곽선, 두텁게 여러 층으로 바르고 또 덧발라진 두터운 마티에르의 질감으로 인한 효과는 그만의 독특하고 전형적인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작품 대부분이 갈색조의 색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 인물들은 세부묘사가 생략됐는 단순화된 형태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의 작품은 이렇듯 배경이 생략되고, 도식화된 인물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어 고분벽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전북도립미술관 한국미술거장전의 <노상의 사람들>, <모자(母子)와 두 여인>, <무제>, <노상의 여인들>, <노상> 등의 박수근 작품에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 구절처럼, 흔들리며 피어난 꽃들이 그의 그림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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