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사건과 국민참여재판
정치적 사건과 국민참여재판
  • 황선철
  • 승인 2013.11.26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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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5촌 조카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동생 박지만 씨가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에 대해 배심원 9명 가운데 6명이 무죄 의견을 냈고, 서울중앙지방법원 담당재판부는 이를 고려하여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 유묵 도난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에 대해 전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의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으나, 전주지방법원 담당 재판부는 허위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무죄, 후보자 비방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배심원들의 평결을 두고 보수 언론 등은 ‘감성적 재판’이니 ‘지역적 성향’에 따른 것이라고 폄해하였다. 나아가 정치적인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에 적당하지 않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정치적인 사건이 어떠한 것인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이념적 대립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 국가권력 또는 집권여당에 대한 각종 부조리를 제기하면서 발생하는 사건, 대선·총선 등에서 상대 후보자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발생하는 사건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은 1975년 인혁당 관련자 재판에서 8명에게 사형, 17명에게 무기징역 등을 선고했다. 유족들은 27년 만인 2002년에야 재심 개시를 청구했는데, 법원은 2005년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어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고 김대중 대통령, 문익환 목사, 윤보선 전 대통령, 함석헌 선생, 정일형 전 의원, 이태영 변호사 등과 함세웅 신부, 문정현 신부 등에게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다.

 역사는 가정을 용납하지 않고, 과거를 현재로 돌이킬 수 없다고 하지만, 당시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존재하였다면 그 재판 결과가 어떠했을까. 만약 당시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어서 배심원들이 긴급조치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 의견을 내었다면 민주 인사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어느 정도 예방될 수 있지 않았을까. 사법부가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한 경우도 있었다는 비판을 하는 식자들이 있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역설적으로 정치적 사건에서 오히려 국민참여재판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물론 정치적 사건은 강도나 살인사건과 달리 배심원들의 성향과 재판 분위기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아직도 지역감정이 상존하여 지역별로 정치적 성향이 갈리는 상황에서 특정한 사건에 대해 과잉·과소 대표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정치적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한다는 주장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도입한 참여재판의 입법취지에 전혀 맞지 않다.

 현행법상 배심원들의 평결에 법관이 직접적으로 구속되지도 않고 법관도 이 평결을 따를 의무는 없다. 그동안 배심원의 평결과 법관의 판결이 다른 사례는 통상 7~8%에 불과하고 90% 이상은 배심원단 의견을 따라서 판결이 내려졌다.

 참여재판에 출석한 배심원들은 국민의 대표자다. 그들의 평결이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으면 정당하고, 그렇지 않으면 부당하다는 것은 특정 세력의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국민의 대표자인 배심원들이 적법절차에 따라 특정한 사건에 대해 평결을 내렸다면 이를 수용하는 것이 재판에 있어서 민주적 정당성을 얻는 것이다.

 다만, 현행법상 배심원의 평결이 법원을 구속하지 않기 때문에 법원이 배심원단의 평결과 다르게 선고를 하였다고 하여 이것을 마냥 비난할 것은 더욱 아니다. 참여재판이 운영상 문제점이 있다면 국회에서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개선하면 될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제도이다. 정치적 사건을 참여재판에서 배제하면 제도의 실익은 반감될 것이다.

 황선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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