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이 아닌 호영남이다
영호남이 아닌 호영남이다
  • 이용숙
  • 승인 2013.11.1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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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자로편에서 공자는 정명사상을 밝히고 있다. 한 제자가 정치를 할 경우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고 했다. 또한, 안연편에서 “정치란 바로잡는 것(政者正也)”이라고 말하며, 바른 이름의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정명이란 인간세상의 과학·정치·윤리적인 명과 실의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사물의 실질과 그 이름을 일치시킨다는 의미로, 참과 거짓·옳고 그름·같고 다름을 분별하는 정확한 논리적 판단의 기준에 해당한다.

 공자는 다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고 말한 바 있다. 명분과 그에 대응하는 덕이 일치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인간이 우주와 합덕합일할 때 윤리적인 올바른 질서가 이루어지는 정명의 사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언어의 관습과 조작
 
 무릇 일상적인 언어에는 ‘관습’이 있다. 특히 상호관계에 있는 두 개념 사이에는 화석처럼 굳어진 관습적인 말이 있다. 가령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를 부자·형제라고 부른다. 그 어디에도 자부 제형이라는 어휘는 쓰여질 수 없다. 천지·상하·대소·장단들이 모두 그런 범주에 해당한다. 수직적인 상하관계이므로 당연한 명명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수평적인 대등한 관계에서는 어떤가? 그 시대의 이념과 관습이 반영되는 듯하다.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사회가 남성과 여성을 ‘남녀·부모·자녀’로 불러왔다. 요즘처럼 남성의 지위와 아버지의 존재감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는 여남이나 모부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동과 서는 서동이라 하지 않고 동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남과 북은 어떤가? 당연히 남북이 입과 귀에 익은 말이다. 최근에는 우리와 휴전선으로 잘린 북한에 대하여 괴뢰 괴물의 집단이라는 생각에서 상당 부분 화해적인 사고가 일반적이다. 한 겨레 한 핏줄로 포용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종종 북한의 보도를 시청한다. 그들은 뉴스에서 남과 북을 우리처럼 남북이 아닌 ‘북남’으로 부르고 있다. 이는 국가간의 당연한 명명이며 자연스럽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름 하나에도 그 집단의 의식과 자존이 표출되며 긍지와 권위도 포함되어 있다. 국제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한미라고 부르면서 ‘미한’이라고 하진 않는다. 일본 중국 영국의 경우에도 언제나 한국을 앞세워 한일·한중·한영이 당연하다. 거기에는 국가의 주권과 자존이 포괄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학의 전통 명문으로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를 꼽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고, 따라서 자존심과 라이벌의식도 강하다. 그 두 대학의 친선경기는 한국 스포츠계의 역사와 함께하며 전 국민의 관심 속에 빅이벤트였다. 오랜 기간별 문제의식 없이 ‘연고전’이라 불러왔다.

 그러다가 한때 고대측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왜 연고전인가, ‘고연전’이면 안되는가? 연대측에서 검토 분석 끝에 흔쾌히 수용한다. 한해는 연고전 그다음 해는 고연전으로 해마다 바꿔가면서 부르기로.
 

 언제부터 영호남인가

  필자가 어느 날 세시풍속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다가 「열양세시기」와 「경도잡지」를 살핀 적이 있다. 그러다가 ‘호영남’또는‘호남·영남’의 표기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호남과 영남의 두 지역을 아우르는 용어로 영호남이란 말에 마취(?)되어 왔다. 아마 60년대부터였을 것이다. 호남의 자존은 실종된 것이다. 호남이 영남에 종속되어 수직적인 상하관계로 전락한 것인가?

 10여 년 전 한 문학단체에서 두 지역 문인들이 모여, 친선 화합 교류 이해의 차원에서 영호남○○문학회를 결성하고, 창립총회와 함께 출판기념회를 치른 적이 있다. 권두시를 쓴 명분으로 초대받아 축하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전후 상황을 개진하고 영호남과 호영남을 병행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일순 축하와 친선의 분위기는 냉각되었다. 저쪽에서는 무슨 망발이냐는 냉소적 반응이었고, 우리 쪽에서도 모처럼 조성된 화합의 자리를 거덜낸다는 거친 비아냥이 쏟아졌다. 내가 과연 트러블메이커였을까. 그 뒤 학계와 문단의 지인들, 특히 영남지역 친구들과 이 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논의한 바 있다. 그들은 대체로 수긍하는 듯했지만, 아직껏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이름을 바로 잡는 것, 곧 정명이야말로 진정한 긍지이며 자존이다. 정명론은 선악과 귀천을 구별하는 도덕가치 판단의 자료에 해당한다. 정명이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진정한 화합과 소통으로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친선 화합 교류 상호이해의 자리에 영호남을 버리고 호영남을 떳떳하게 주장하자. 호남인의 긍지와 자존을 우리 스스로 지켜 나아가자.

 이용숙<전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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