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옥 칼럼<6> 선택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이영옥 칼럼<6> 선택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 이영옥
  • 승인 2013.11.06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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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중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국가와 문명 건설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는 또 다른 형태의 지배논리를 고착시키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현대 중국의 중화주의는 패권주의와 다르지 않다. 중화주의는 다른 문화, 다른 가치, 다른 삶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패권 지향적이며 더없이 강력한 도그마다.

 공존이란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존재양식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는 대상 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할 때에만 성립이 가능한 논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 밖에 이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삶의 가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공생하는 방법과 구도를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세계화고 선진화이며 전 지구적 삶의 방식에 부응하는 새로운 인식체계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 민주주의는 실현 불가능하고, 신자유주의는 지속 불가능하다. 이상은 현실이 아니고 중단 없는 성장은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잘 현존하는 가치와 인식의 혼란을 경험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자명해진다.

 

 <우리에겐 아주 오래된 꿈이 있다> 경계와 근린의 자리 매김을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우리의 필요와 쓰임새에 따라 상대와의 거리를 설정하는 영민함과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다.

 우리에겐 아주 오래된 꿈이 있다.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모진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지 않고, 생(生)을 마치는 그날까지 정든 이들과 헤어지는 일 없이 함께 어우러져 즐겁고 기쁜 일들만 마중하며 사는 일이다.

 이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길 없는 길을 간다. 무수히 속아왔으면서도 다시 속아보기 위해 기약 없는 길을 떠난다. 동북아 대륙의 한쪽 모서리에 자리해 영토도 인구도 자원도, 그 지닌바 국력에 이르기까지 주변국에 비해 어느 것 하나 더 낫다고 내세울 것이 없으면서도 수많은 이민족의 침탈을 견뎌내면서 천년왕국을 지탱해온 나라, 한 번 왕조가 들어서면 족히 5백 년을 섬기면서도 역성혁명을 당연시하고, 신명과 흥이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해치우며, 존장과 이웃 보살피기를 제 몸처럼 하고, 스스로를 천손(天孫)이라 일컬으면서, 가무음곡을 특별히 즐겨 하늘과 땅에 경배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자연의 생기(生氣)를 북돋우고, 여러 가지 사람살이 가운데 특히 모듬살이를 중히 여겨 두레의 풍속과 말, 문화를 면면하게 이어온 나라, 이 땅은 그런 이들이 대를 이어 터를 잡고 가꾸면서 살아온 곳이다.

 반면에 오랜 역사만큼이나 더 오랜 세월에 걸쳐 가해진 극심한 수탈과 전제적인 폭압에 시달리느라 인종(忍從)과 굴신(屈身)이 몸에 익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간난과 고통의 정도가 너무 심대하므로 자신을 위한 어떤 일도 꾸미지 못하는, 그래서 더욱 조용한 은자(隱者)들의 땅이었다.

 이 땅이 그동안의 깊고 오랜 잠에서 깨어 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에 이 나라의 민초들은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놀라운 일들을 참 많이도 이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것,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소망과 열망에 부응할 사람 선택하자> 오히려 많이 모자랐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핍과 빈곤을 천형(天刑)인양 감내하며 지냈다. 그런 마음가짐이 넉넉함인지 모자람인지 알 수 없지만, 이즈막엔 그 여유로운 성정마저 변하는 조짐이 보인다. 매사에 각박해져 작은 일에도 모질게 다투고, 상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자기 앞에 놓인 남루하고 척박한 현실에 분노하며, 가진 자를 증오하고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들의 분노와 증오와 절망이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몸담은 나라와 사회의 주역인 정권담당자들은 아주 오래 그들의 주장과 항변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왔다. 그래서 그들 내부에 쌓인 분노와 증오와 절망은 더욱 깊어져서 마침내 치유는커녕 폭발 직전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화해와 용서와 타협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확고한 신념이다. 평등과 평화, 인권에 대한 꿈을 끝까지 간직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다. 이런 일들이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나라, 그런 사회에서 사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변함없는 소망이며 열망이다. 그런 소망과 열망에 가장 잘 부응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 2014년을 살아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이며 책무다.

 어느 누구라도 향후 우리의 삶과 운명을 감당하려는 자者는 끊임없이 역사(歷史)와 대화를 나누는 한편, 적어도 현시점에서의 갖가지 문제적 사안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견해와 실천의지를 밝히는 것이 다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내년 선거에서만은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나라를 위해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어 온 몸을 불사를 그런 사람을 가려 뽑아야 하겠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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