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대접받지 못하는 아빠의 명곡
133. 대접받지 못하는 아빠의 명곡
  • 한성천 기자
  • 승인 2013.11.05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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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자동차로 이동을 하면서 자주 겪는 일이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올 때다. 모처럼 통기타의 감미로운 멜로디와 함께 학창시절에 즐겨 듣던 노래가 나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감흥에 빠져들 겨를도 없이 딸아이가 라디오 채널을 돌려버린다. 이내 여러 기계음들이 복잡하게 섞인 빠른 비트의 멜로디와 랩, 외국어와 우리말이 뒤섞인 노래로 바뀌어 버린다. 딸아이는 이 노래를 신이 나서 따라 부른다.

“좋아?” “응.” “그런데 아까 그 노래는 왜 돌려버렸어?” “그 노래는 촌스럽잖아.” “….” 잠깐 동안 대화가 단절되었다. 촌스럽단다. 필자의 귀에는 명곡으로 들리는데 아이에게는 촌스러운 노래라니 도대체 설명이 안 된다. 느낌은 알겠지만 누구에게는 좋은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는 촌스럽게 들린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라디오에서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딸아이는 라디오의 볼륨을 올리며 더 큰소리로 따라 불렀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익숙한 것을 세련되었다고 하고 낯선 것에는 호감을 보이지 않는다. 딸아이가 촌스럽다고 한말은 어쩌면 ‘그 노래가 나에게는 낯설어요.’라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교육 현장에도 세대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얽힌 관계를 회복하는데 시간을 더 할애한다. 학생과 교사, 동료 교원, 관리자 사이에 생기는 숱한 갈등들이 빈번해져서 효율적인 교육이 방해받고 있다. 의기소침해진 학교경영자와 눈치를 살피는 교사들, 무기력해지는 학교와 늘어나는 교원명예퇴직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국적으로 한해 약 3,000명 정도의 교원이 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나고 있다. 교직에 대한 선호도를 감안한다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관계가 좋아지기를 원한다면 원하는 쪽이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담아 들으며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혹시라도 억압적인 방법으로 자기주장을 관찰시키려한다면 관계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설사 강요에 의해 의지를 반영했다하더라도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거나 어쩔 수 없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들어주는 척 했을 것이다. 따라서 언제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할 여지가 남아있다.

방법은 한가지다. 상대를 내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의 행동에 대하여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감정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방법이 생긴다. 이처럼 관심만 보여주기만 해도 상대는 호의적으로 변할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필자도 딸아이와의 관계를 돌이켜 보았다. 딸아이의 귀에는 필자가 명곡이라고 생각했던 노래가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노래인데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음에 같은 상황에 부딪혀도 당황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노래가 낯설지? 아빠가 학생일 때 이 노래를 아주 많이 들었단다. 그래서 감미롭게 들려. 아빠의 입장에서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함께 들어보지 않겠니?” 이렇게 말해야겠다. 딸아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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