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십 리 대밭
태화강 십 리 대밭
  • 진동규
  • 승인 2013.10.31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십 리 대숲이 나를 붙들었다. 발길을 되돌리기로 했다. 초가을 햇살을 흔들어대는 댓잎들이 그렁그렁 손수건을 꺼내 들고 있지를 않은가. 잘 가시라고 내젓는 손짓은 아니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의 ‘잘 가라꼬.’가 아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자음의 색색 실을 박음질해내는 살가운 여인의 손수건 빛,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십 리(4km)에 걸쳐 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부르는 이름이다. 1749년 발간된 울산 최초의 읍지 ≪학성지≫에 대밭의 기록이 있다. “오산 만회정 주위에 일정 면적의 대밭이 있었다.”라는 기록인데 그러면 천칠백 년 그 이전부터 태화강변에는 대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안내문은 적고 있다.

 대나무가 품어내는 기운인 줄만 얼른 생각했다. 대숲에 발을 들여놓는데 나를 감싸는 서느러운 청량감, 그것인데 십 리 길 내내 기운을, 그 질량을 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발길을 되돌려 다시 걸었던 것은 대숲과 함께 나누던 이야기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것일 터이다.

 왜 그때 겸재 선생을 찾았을까. 1700년 초 그 무렵이면 겸재 선생의 붓질이 맹렬했던 시기다. 이 나라 구석구석의 명소들을 두루 그렸고 많은 작품들을 통하여 다양한 기법을 보여준 작가였기에 그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에워싸는 청대 숲의 죽죽 뻗은 직선에 어떤 붓을 들이대었을 것인가. 대나무들이 쏟아내는 푸른 기운을 어떤 물감으로 풀어낸다는 말인가. 금강전도를 그려내는 겸재 선생이다. 대나무 사이사이로 통해 건너다보이는 강 언덕은 지금 초가을의 햇살을 받아 연둣빛으로 더러는 초록으로 큰 띠를 이루며 빛나고 있다. 보랏빛 띠를 동여맨 듯한 저것은 도도한 태화강의 흐름이 이루어내는 마술인가? 동해안의 바다풍경들을 굵은 터치로 후려 버렸던 겸재가 이 순간을 함께했어야 한다.

 저만큼 앞서가는 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조금 전 나를 앞질러갔던 사내다. 운동화를 벗어들고 맨발로 걷던, 물 한 병 들고 가던 사내, “못 오는 사람 찾지 마.” 한마디 흘리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숲 속은 댓잎들이 푹푹 쌓여 있었다. 백석의 눈 더미보다 더 깊어져 있는 것이다. 이 대밭을 지켜낸 울산 사람들이 고맙고 고맙다. 1970년대부터 경제 가치에 이깟 둔치쯤하고 콘크리트 굴뚝 시커멓게 심어버렸을 법도 한데 아심찮고 아심찮다. 맨발을 하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던 그 사내가 십 리 대밭을 지켜냈을 터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새기던 그 손길이 지켜냈을 것이 아닌가. 족제비, 거북이, 멧돼지까지 다 나와서 도왔을 것이다. 돌고래, 큰고래, 혹등고래, 긴수염고래 아니 작살에 꽂힌 고래까지 다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대숲을 지켜냈을 것이 아닌가. 십 리 대밭 깊은 자전거도 못 들어온다. 대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산책길이다. 그렇게 귀한 길을 울산 사람들은 가꾸고 있었던 것이다.

 때가 되면 태평양 연안의 연어 떼까지 올라온다고 한다. 섶다리 기둥만 한 연어 떼들이 올라와서 대숲 안자락에서 새끼들을 키운다고 한다. 그 머나먼 길을 산란을 위해 올라오고 산란 후에는 죽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알에서 깨어나는 어린것들의 먹이가 된다고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린것들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야 옳은 것이 아닐까. 내년 연어철에는 가족들이랑 함께 십 리 대밭 길을 걸으면서 연어 가족들을 만나야겠다.

 진동규<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