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의 비조 반계 유형원과 부안 우반동
실학의 비조 반계 유형원과 부안 우반동
  • 이동희
  • 승인 2013.10.3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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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학의 비조 반계 유형원이 그의 개혁사상을 집대성한 『반계수록』을 집필한 곳이 부안 우반동이다. 반계는 1653년(효종 4) 그의 나이 32세 때 부안 우반동으로 내려와 52세로 졸할 때까지 20년간을 살았다.

 지난 25일 “반계 유형원의 실학사상과 그 계승방안”이라는 주제로 전북사학회 주관하에 부안군청에서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튿날은 반계 유적지를 답사하였다. 반계의 실학사상이 무엇이고, 반계와 부안과의 관계는 어떠하며, 반계의 실학사상을 지역 차원에서 어떻게 계승발전시킬 것인가를 논하는 자리였다.

 지역에서 반계기념사업을 하고자 할 때 어려움의 하나는 반계에 관한 지역자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반계가 우반동에서 20년을 살았고, 우반동에 내려오기 1년 전에 시작하여 세상을 뜨기 3년 전까지 19년에 걸쳐 『반계수록』을 완성하였지만, 부안에서의 그의 삶은 잘 밝혀져 있지 않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간의 조사연구들이 반계의 개혁사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부안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연구들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반계에 관한 지역의 관심이 적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반계와 부안의 관계에 대해 발표하였다. 반계의 우반동 삶에 관해 밝혀진 자료들이 별로 없고, 또 그 후손들이 우반동에 한 집도 남아 있지 않지만, 기존자료와 구전을 통해 몇 가지 논의를 끌어낼 수 있었고 향후 지역자료 조사를 위한 단초들이 모색되었다.

 반계가 부안에 내려오게 된 것은 아버지 유흠이 역모로 몰려 죽었고, 9대조 유관이 왕으로부터 받은 사패지가 우반동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더 들어가 보면 반계가 낙향한 것은 정치적 좌절과 함께 조부 유성민이 경작하던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서였다.

 반계집안의 우반동 땅은 오랫동안 묵혀져 있었다. 이 땅을 논밭으로 일구어 농장을 경영한 것은 반계의 할아버지 유성민이었다. 유성민은 1612년(광해군 4), 반계가 낙향하기 40여년전에 우반동에 내려와 논밭을 일구어 경작하였다. 병자호란(1636년)을 전후해서는 아예 우반동에 내려와 거처하였다.

 조부 유성민이 1651년에 운명하자 반계는 3년상을 마치고, 그 해 1653년 부안으로 낙향하였다. 반계가 부안으로 내려온 것은 할아버지를 대신해 부안의 농장을 경작하기 위한 차원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부안과 반계의 관계가 알려진 것보다 더 깊었고, 그의 개혁사상이 실제 농장경영을 통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편, 후학양성과 관련해서도 현재는 반계의 문인으로 김서경과 유문원 2인밖에 알려지지 않지만, 실제로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서경이 반계의 행장을 지을 때 제자들을 대표해 스승의 일대기를 짓는다고 하였고, 호남 사림들이 주관하여 부안 동림리에 반계를 배향한 반계사(동림서원)를 건립하였다.

 그럼에도, 문인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우선 당색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는 북인계열로 북인이 몰락하자 남인계열로 흡수되었다. 동림서원이 건립된 1693년은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잠시 집권하던 때이다. 반계의 삶은 생각보다도 더 당색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반계가 실각한 북인과 남인 계열인 것이 그의 후학들이 묻혀버린 이유로 생각된다.

 또 반계 사후에 그 후손들이 흩어지고, 우반동에 부안김씨들이 들어와 새 주인이 되었던 것도 요인이 있다고 본다. 부안김씨 김홍원이 반계의 조부 유성민으로부터 전답 30결을 매입하였고, 그 손자 김번이 숙종초 우반동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이후 부안김씨들은 300여년간을 우반동에서 세거하여 우반동김씨들로 일컬어졌다. 우반동은 반계 사후 부안김씨들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또 이들 우반동 부안김씨의 당색은 서인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반계가 실각한 북인과 남인계이고, 그 후손들이 우반동을 떠남으로써 부안에서의 그 삶의 흔적들이 묻혀졌다. 하지만 향후 본격적인 조사연구를 통해 반계에 관한 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밝혀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 방법으로는 지역 인물들에 관한 당론적 접근과, 향촌세력들의 부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계에 관한 구전채록 등 지역자료 조사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조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 이렇게 해서 부안에서 반계의 삶이 구체적으로 밝혀질 때 반계 기념사업과 자원화사업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계에 관한 지역사적 규명은 이제 시작이다.

 이동희<전주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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