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0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③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③ 국가간 전쟁은 한 국가가 상대 국가를 무력으로 굴복시켜 자국의 전쟁목적을 강제로 성취하려는데서 야기된다.이해 풍신수길의 일본은 선조왕(宣祖王)의 조선에 대해 ‘대륙진출의 길(征明假道)을 비키라’고 요구했고, 조선은 이를 거절했다. 일본의 전쟁목적은 ‘정명가도’를 강제로 트는 것이었고 조선의 전쟁목적은 이를 물리치는 것이었다.7년 전쟁 끝에 일본은 전쟁 목적의 성취에 실패했고, 조선은 끝내 성취에 성공했다.조선이 승전국임은 그뒤 더욱 분명해진다. 패전국은 국가가 망하거나 정변을 겪기 마련이다. 일본의 풍신수길은 정권의 세습에 실패했고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김재춘 | 2019-08-14 09:52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②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② 일본 본토로부터 후방 보급로가 끊기고, 朝·明연합군의 반격과 동장군에 몰린 일본은 평양과 함경도 일대의 점령지로부터 겨 한성으로 후퇴했다. 그해 겨울을 가까스로 넘긴 일군은 이듬해 1593년 봄 4월 심유경(沈惟敬)의 강화교섭을 기회로 일시 부산까지 퇴각, 남해안 일대 왜성(倭城)을 쌓고 바다를 배경으로 농성하는 방어군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때까지의 전쟁의 경과는 2백여 년 뒤 1812년의 프랑스-러시아 전쟁의 경과와 매우 흡사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영국에 대한 대륙봉쇄령을 듣지 않는 러시아를 굴복시키기 위해 47만의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김재춘 기자 | 2019-08-12 12:44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①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프롤로그 ① 1592년 임진년(壬辰年) 조선(朝鮮)과 일본(日本)의 7년전쟁은 조선의 최후의 승리로 끝났고 승리(勝利)의 주역은 전라도(全羅道)였다.그러나 종전(終戰) 4백년이 되도록 한국인(韓國人)은 이 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했음을 깨닫지 못해왔고 전라도가 그 주역(主役)이었음을 더더구나 알지 못해왔다.이제 잃어버린 국가자존(國家自尊) 민족자존(民族自尊) 그리고 전라도의 지역자존(地域自尊)의 회복을 위해 그때의 전쟁은 다시 조명되어야 하고 전라도의 역할은 다시 확인되어야 한다.1592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백년전이다. 이해는 태조 이성계(李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김재춘 기자 | 2019-08-07 10:30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들어가며 - 1992년 1월1일 게재 시작 지난 과거기사 리뷰 ‘코리아나 리더 이승규의 자전적 수기’로 현재 전세계를 열광시키는 K-POP의 원류격인 코리아나에 대해 새롭게 조명해 보았다. 이번에는 1992년 1월1일부터 1592년 임진년 朝·日전쟁 400주년 기념 기획특집으로 보도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蕪瑚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특집을 다시금 온라인을 통해 게재한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 징용자에 대한 배상을 꼬투리 삼아 지난달부터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되고, 이에 맞서 우리 국민의 자발적인 일본상품 불매운동 즉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김재춘 기자 | 2019-08-05 11:08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끝끝